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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고 일컫는 황산에서 매일 짐꾼으로 사는 한 어른의 이야기를 본 적 있다. 어깨에 시멘트 50kg 이상을 짊어지고 평생을 오르락내리락 무한 반복의 삶을 사는 다큐멘터리였다. 어깨는 가냘팠지만, 그 위에 황산보다 더한 무게를 옮겼을 세월에 숙연해졌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건 종교만큼이나 거룩하다. 막장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여정, 그 어느 지점에서 시작한 짐꾼 생활에서 흘렸을 땀은 또 장강만큼이나 유유했으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면서도 잠시 쉴 때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의 춤과 노래는 황산을 들썩였다. 춤사위의 손끝에서는 달빛이 일렁거렸으며, 구슬픈 가락의 곡조는 바윗돌마저 감흥으로 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루에 수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자신을 버티게 했던 건 가족이라고 했다. 그동안 어깨는 굳은살이 수없이 벗겨지고 또 새살이 돋기를 반복했다. 매일 새벽마다 자신을 다스리며 일어나는 힘, 그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처럼 고전에 취해 혜환 이용휴(1708~1782)의 <당일헌기當日軒記>를 펼쳐 다시 읽어 본다. "사람이 오늘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면서 세상의 도리가 잘못되게 되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는 바가 있으려면 다만 오늘에 달렸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비록 3만 6천 날이 잇달아 온다고 해도 그날에는 각각 그날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 실로 이튿날에 미칠 만한 여력이 없다. 참 이상하다. 저 한가로움이라는 말은 경전에 실려있지 않고 성인께서 말씀하지도 않았건만 이를 핑계로 날을 허비하는 자들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주에는 제 직분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또 이렇다. 하늘 자체가 한가롭지 않아서 늘 운행하고 있거늘, 사람이 어떻게 한가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단 말인가?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된다. 한 인간을 만드는 것도, 하루하루 행동을 닦은 뒤에야 크게 바뀐 사람에 이르기를 바랄 수 있다. 지금 신군(申君)이 몸을 수행하고자 하는데 그 공부는 오직 오늘에 달려 있다. 그러니 내일은 말하지 말라!"


 참으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하지 않고 게으른 것은 세월을 허비하는 좀벌레와 같다고 한다. 어제는 이미 과거요,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지나간 날을 후회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산다는 것만큼이나 허허로운 것도 없다.


 책의 다음 부문을 더 읽어 본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도산사숙론>이다.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 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시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 바둑과 공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


 한가하다는 말은 요즘 시대에 이르러 쓰는 말이지 옛날에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을 소중하게 쓰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일 것이다. '한가하다'의 한(閒)은 문을 열고 달을 바라본다는 데서 따온 문자다. 이것이 바로 낭만과 여유로움이다. 그러나 농경사회에 있어서 저런 여유가 어찌 평민에게 쉽게 허락되었겠나. 요즘은 주 5일 근무니, 재택근무니 하면서 삶의 질과 방식이 옛 생활과 비교할 바는 못 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옛 성현의 케케묵은 일침으로 보아넘길 수 없다. 요즘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고령화 사회 등으로 기초생계문제 등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허투루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아무리 틀어 잠가 두어도 5~6초마다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진다. 그 물이 아까워 큰 통을 받쳐 두면 이틀이 채 안 돼 가득 담긴다. 시간도 이와 같다. 작은 시간이 모여 큰 시간이 되고 세월이 된다. 초사흘 달을 보는 잰 며느리처럼 더 부지런히 오늘을 건너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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