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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3년만에 열리는 울산옹기축제행사. 울산신문 자료사진
오는 30일 3년만에 열리는 울산옹기축제행사. 울산신문 자료사진

옹기마을 마실 간다. 우리나라 최대 생산지에서 갖가지 옹기를 보며 하루해를 넘겨볼까. 길가 코스모스가 나긋나긋 초가을 흐린 잔비를 맞는다. 장독 뚜껑을 눌러쓴 반쪽 몸의 옹기장승이 품으로 어서 들라 손짓한다. 마을 사람들은 건넛마을로 마실 나갔나. 수백 수천의 옹기들만 집집이 모여 앉아 객을 맞는다. 장인의 손마디 같은 마을 길을 한 바퀴 돌아본다. 입구 왼편의 경남요업, 발효아카데미관 옆의 영화요업, 옹기박물관 앞의 가야신라토기, 성창요업, 옹기골도예를 꺾어 돈다. 옹기아카데미관 갓길에 즐비한 일성토기의 독들이 우후죽순 같다. 금천토기는 마을안내센터 뒤편에 있다. 서종태, 배영화, 장성우, 조희만, 허진규, 신일성, 진삼용, 일곱 장인의 수고로움이 아기자기 옹기종기 옹기 세상을 마련해 뒀다. 가마 곁을 오르내리며 시커먼 속을 기웃거려본다. 이곳의 전통가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도입한 계단식 칸가마(노보리가마)이다. 옹기는 한반도만의 생활문화가 아니었던가. 어떻게 일본에서 왔을까.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도공 이삼평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는 아리타 지방에서 백토를 발견해 백자를 구웠다. 1650년 이후엔 다채롭고 화려한 자기를 생산해 전 세계로 수출했다. 지금도 아리타는 대표적인 명품도자기 생산지. 지구도 문물도 사람도 둥글게 흐르고 돈다. 한반도만의 그릇문화를 알려면 옹기박물관을 들르는 게 먼저겠다.

# 기후·양질의 흙·경사진 언덕 유리한 입지 조건 …각지 옹기장들 외고산 모여 들어
유리문을 열자마자 시야를 압도하는 커다란 옹기. 발길이 절로 가닿는다. 제목은 '가장 큰 독'(The largest earthenware pot). 2011년 6월, 기네스에 인증됐다. 전통옹기를 되살리려는 염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울주군이 지원했다. 2009년 3월부터 대형가마를 짓고 작업했으나 다섯 번을 실패했다. 2010년 세계옹기문화엑스포(9월 30일~10월 24일) 전날 극적으로 옹기가 완성되었다. 높이 223cm, 최대둘레 517.6cm, 입구 둘레 214cm, 입구 지름 69.4cm, 무게 172kg. 기나긴 시간을 흙, 물, 불, 바람과 동고동락한 장인들의 땀방울이 독 안을 출렁이는 느낌이다. 부모와 나들이 온 예닐곱 살 꼬마의 신발이 바쁘다. 온갖 독이 신기한지 연신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아빠, 이거 뭐예요?" 손을 잡아끈다. 무념무상에 들었던 옹기들이 명랑한 음성에 들썩인다. 아이뿐이랴. 나도 이끌려간다. 시골집 장독대만 떠올린 까막눈에 밀려든 오만 가지의 모양. 생업옹기, 음식옹기, 물옹기, 술옹기, 소금옹기, 기와, 연탄아궁이, 지통, 옹관, 악기, 의약그릇, 문방구, 부엌용구, 장독용구, 옹기장수의 등짐옹기…. 일상 구석구석에 자리한 그날의 옹기들. 문양도 제각각의 의미를 담고 수천 년의 시대상을 그려온 물상.
 
 2층으로 가는 통로는 마치 옹기굴로 드는 듯하다. 가마터의 옹기 제작과정을 동영상으로 보며 오른다. 흙을 반죽해 흙띠 만들기. 물레 위에서 모양 만들기. 그늘에서 옹기 말리기. 유약(잿물) 바르기. 잿물이 마르기 전 문양 그리기. 가마 안에 재어 넣기(가마재임). 불 지펴 온도 조절(창불넣기)로 굽기. 가마 속은 흙이 불을 견디는 시간이다. 꼬박 열흘이다. 냉기와 습기 제거를 위한 200℃ 이하의 피움불(핀불, 핌불) 4일간. 가마와 옹기의 그을음이 연소하며 달아오르는 550~600℃ 중불 2~3일간. 화통에 불이 가득해지며 옹기가 그을음을 벗고 익는 800~1150℃의 다름불(한불) 3일간. 1,200~1,250℃의 창불. 그런 후 가마를 서서히 식혀 소성하는 데에 2~5일. 막은 가마문을 허물고 꺼내면 뜨거운 옹기가 태어난다.
 
 "전통가마 운영은 혼자서는 어려워요, 작업을 분담해야 하고 인력도 제법 필요하지요. 최소한 보름이 걸리니 날을 지새우며 불을 지켜보는 일도 쉽지 않고요. 기후도 중요해요. 가마가 젖어있으면 곤란하고요. 그래서 일부 칸만을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개인소유였지만 유지관리가 힘들어진 이후 연 1회 정도 옹기협회 공동으로 쓰지요. 문화 관광지로 선정된 후 울주군이 매입했고, 대여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옹기장들은 저마다의 작은 가마로 만듭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옹기 특색에 따라 종류와 형태, 규모가 다르고요." 후계자 수업을 받는 이는 현재 한 명이란다. 수익 기대치가 줄어 후계자 양성이 쉽지 않은 고충을 마을센터 담당자가 덧붙인다.

울산옹기박물관. 울산시 제공
울산옹기박물관. 울산시 제공

# 한반도 그릇문화 역사 담아낸 '옹기박물관' 
1957년 허덕만 선생을 따라 이곳에 터를 잡은 영화요업 배영화 장인은 "교회에 다닌다고 부모님께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였죠. 고향 사람 십여 명이 함께 들어와 옹기를 배우며 가족을 일궜어요. 산뿐인 곳에 터를 닦았고, 옹기장이 모여들면서 1960년 후반에 행정단위의 마을이 된 겁니다. 오늘도 제 공방에서 수작업을 했어요. 도공이 모자라고 틀도 비싸니 아직 손으로 하지요. 옛날엔 도공 서너 명이 한 달을 작업하며 옹기를 매번 구워냈어요. 이젠 기계로 대량생산하니까 수작업하는 곳은 거의 사라졌고요. 다들 나이도 들었지만 경제성도 없으니…." "예전엔 도공이 하층민에 속했어요. 울산무형문화재 4호 장인으로 인정받기도 했고, 외국에서 독 만들기 시연을 하면 기적을 행하는 듯 봐주니 어깨가 올라갑니다." 현재의 가마는 새틀가마(일명 콘테이너가마)이며 나무, 벙커C유, 가스 등의 연료를 쓴다고 한다. 전통가마와 기계가마 독의 차이는 뭘까. 대형가마솥에서 20인분의 밥을 지어 먹는 맛과 압력솥에서 2인분의 밥을 지어 먹는 맛의 차이라고 설명을 곁들인다.

# 최소 보름 걸리는 전통가마 방식…시대 요구에 걸맞는 변화와 시도로 맥 이어가
이름이 남다른 가야신라토기에 들어섰다. 노랑나비가 따라와 선반의 기마 인물상으로 날아간다. 장성우 옹기장은 물맛에 반해 아내와 함께 도기에 빠져들었다."전통가마에서 장작으로 구운 것들입니다. 잿물을 안 쓰고 흙으로만 만들어 건조해 색을 냅니다. 공기구멍이 커서 숨 쉬는 기능과 발효성이 탁월해요. 고추장독, 된장독, 김칫독 같은 저장 용기로는 가장 우수하지요. 가야나 신라 때는 유약을 안 쓰고 흙으로만 만들어 장작불로 구웠어요. 그 정통을 이어나가는 겁니다. 장작불에 굽힌 그릇엔 물때가 안 껴요. 물맛이 살아있고요. 남다른 물맛 때문에 고객들이 광고까지 해주지요." 그러고 보니 가게 안이 물그릇과 물항아리로 가득하다. "기름이나 가스가마가 편하긴 하죠. 장작으로 굽는 일이 고단해도 인정을 받으니 희망을 가집니다." 과거와 현대의 공존을 신조로 새로운 모양새를 연구한다는 장성우 장인. 이곳을 지켜가는 모든 옹기장인의 한결같은 자세일 것이다.

 각지에서 대를 이어가던 옹기장들이 외고산에 든 까닭은 뭘까. 온양(溫陽)지역의 따뜻한 기후, 고온에 유지되는 양질의 풍부한 흙, 가마 짓기에 알맞은 경사진 언덕, 운송에 유리한 입지를 갖춘 곳이 이 외고산이다. 1960년대가 전성기였다. 옹기(甕器)는 숨 쉬는 그릇으로 불린다. 신석기부터 근·현대의 생활사에 이르기까지 밥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세계 유일 그릇문화이기도 하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잿물을 안 입히고 진흙으로만 구운 질그릇은 통기성이 좋아 저장 용기로 썼다.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오지그릇은 윤이 나고 단단하다. 불에 잘 견디고 흡수력이 낮아 취사용, 운반용, 수납용으로 썼다. 편리한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의 유입은 봉숭아 옆 장독대도, 살강에 얹힌 사기그릇도 흙으로 돌려보냈다. 전통음식을 이어가는 이들, 전원의 풍경, 다양한 찻잔, 시대 요구에 걸맞은 변화와 시도로 맥을 이어간다. 옹기마을은 옹기의 공기구멍같이 오늘도 숨을 쉰다. 

옹기 판매장 둘러보는 외국인 관광객. 울산옹기축제 홈페이지
옹기 판매장 둘러보는 외국인 관광객. 울산옹기축제 홈페이지

# 30일~10월 3일 3년만에 열리는 '옹기축제' 즐길거리 풍성
올해의 옹기축제 구호는'웰컴 투 옹기마을'. 9월 30일~10월 3일까지 연다. 유명세와 더불어 3년 만의 대면축제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는 마을센터의 귀띔이다. 전통성과 디지털이 결합된 옹기의 친환경성을 테마파크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 이전에는 옹기장들이 주도했으나, 울주문화재단이 주관한 이후부터는 손으로 독 짓는 작업에만 열중하는 옹기장인들. 그들의 오랜 손길에 화답하는 옹기와 현대인의 대화 시간이다. 독의 울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깊고도 넓다.
 

김려원 시인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마음에 부스스 찬바람 이는 날엔/ 곧메질 태림질에/ 흙이 옹기로 일어서는 외고산으로 가자// 어둠처럼 깊은 가마 속 들여다보며/ 길고 긴 기차여행을 상상하거나/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곰 이야기나/ 큰스님 다비식 날 '스님, 불 들어갑니다' 하고 소리치던/ 젊은 상좌의 목소리를 떠올려도 좋으리// 마음에 부스스 찬바람 이는 날엔/ 태양을 삼킨 새처럼/ 가슴 가득 불 지피러 외고산으로 가자 - 신혜경 '외고산 옹기마을'전문
 
 이곳 장인들의 코흘리개 적 식구인가 보다. 박물관 화단이 도자기 인형 밭으로 꾸며져 있다. 옆에서 네 살 꼬마가 통통 물장구를 친다.'동무야, 나랑 같이 놀자!'하는 눈빛이 구름 사이로 빼꼼 나온 하늘빛 같다. 가마골 앞 감나무에서 홍시 하나 뚝 내려앉는다. 감잎은 오색 물에 빠져들었다. 마음에 찬바람 이는 당신, 불 속에서 오래 견딘 옹기처럼 마실을 나오리라. 어둠 깊은 가마 속 들여다보러 외고산으로 발길 재촉하리라. 당신은 태양을 삼킨 새 한 마리, 천년을 불 지피는 가슴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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