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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정 동화작가
최미정 동화작가

창문 밖으로 여명이 비친다. 아침이 옴을 직감한 순간 휴대폰 알람음이 울린다. 아침 7시를 알리는 소리다. 내 옆에는 부스스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침을 맞는 남편이 있다. 일어나 한 숟가락도 채 안 되는 밥을 뜨고 주섬주섬 가방과 차 키, 휴대전화기를 챙겨서 현관문을 나선다. 남편이 평소에 즐겨 신던 구두 속에 남편의 일과가 실려 나간다. 뒤축이 달아서 바닥에 작은 틈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아침마다 남편을 정확한 시간에 출근시킬 수 있는 것은 모두 휴대전화 알람음 덕분이다. 내 머릿속 시계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서 빨랐다가 느렸다가 믿을 수가 없다. 똑 부러지게 시간을 알려주는 휴대전화가 아니면 남편의 칼날 같은 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런데 알람 저장 버튼을 잘못 누른 탓인지 휴대전화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일어나야 할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눈을 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알람이 제대로 저장이 되었는지 살펴볼 일이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다음날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제시간에 깨워 주라며 당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남편을 헐레벌떡 뛰게 했다. 현관문을 빠져나가는 남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남편은 나를 알람으로 생각한다. 이십 년을 넘게 살면서 남편을 깨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고 털썩 주저앉으니 유년의 아침,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른 아침, 장닭이 깃을 세우고 울면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와 외양간으로 향했다. 아버지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잠잠하던 소들이 일어나 워낭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간소하게 차린 된장 밥상을 뜨고 헛기침을 두 번 한 다음 어김없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일어나 거라 해가 중천이다." 나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해가 중천까지 떠오르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해가 뜨기도 전에 목 놓아 울기부터 하는 장닭도 미웠지만, 어김없이 내 방문을 두드려 잠을 깨우는 아버지도 원망스러웠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보지만 한 번 뜬 눈은 다시 감기지 않았다.

 어느 집 장닭이 울면 메아리가 되어 동네의 장닭 들이 일제히 목을 추켜세우고 울었다. 동네는 순간 침묵이 깨지고 활기를 띠었다. 꿀맛 같은 잠을 장닭 울음소리에 빼앗긴 나는 귀를 털어 막고 아버지에게 장닭을 팔라고 졸랐다. 그리고 제발 알아서 일어날 테니 문 두드리는 일만은 참아주시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똑같이 반복되는 휴대전화기의 알람처럼 새벽이 되면 장닭이 울고 아버지는 어김없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동네에 장닭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닭은 키워봤자 성가시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마침 아버지도 장닭을 이웃에 팔아버렸다. 귀한 손님에게 대접해야 한다는 이웃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새벽마다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자 반갑기보다 뭔가 허전했다. 닭 없는 마당을 바라볼 때는 쓸쓸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급하게 출장을 가고, 아이들이 하나둘 집을 떠난 후의 빈자리처럼.

 장닭 없는 아침은 고요하기만 했다. 아침햇살이 방안에 가득 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들일을 나간 뒤였다. 내가 아침상을 준비했다. 칼칼한 콩나물국을 끓이고 가지나물을 무치고 계란찜을 했다. 더운 여름날 새벽일을 마친 아버지가 드실 수 있도록 빠르게 차려 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행동이 조금씩 굼뜨기 시작했다. 내가 타지로 떠나, 가끔 시골집을 찾았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지게를 짊어지고 밭으로 가셨던 아버지가 늦잠을 주무셨다. 간밤에 깨밭을 갈아야 한다고 했던 아버지가 일을 놔두고 저토록 한가한 것을 처음 보았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얼굴을 붉히고 간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한 이불 쓰는 알람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볼 뻔했는데, 일이 잘되었다고 했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알람을 바꾼다고 협박도 했다. 별로 필요 없는 농담까지 던지는 것으로 보아 일이 잘되긴 한 모양이다. 휴대전화 알람 저장하는 법을 다시 살펴본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아버지를 보고 한시름 놓았던 예전 그날처럼.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었다. 아버지 연세에 맞는 일을 찾기가 어려웠다. 외양간의 소들도 먹이를 감당하지 못해 모두 팔아버렸다. 밭에 심어놓은 푸성귀 몇 가지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은 없었다. 아버지가 멍하니 먼 산만 보는 날이 많아졌다. 그 모습이 퍽 안타까워서 다시 닭을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예전처럼 놓아 기르지 않고 외양간을 개조해 닭장을 만들었다. 철망을 치고 기둥에 못을 박았다. 닭 다섯 마리를 구해다가 닭 장안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 장닭이 울었다.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반가워서 아버지와 나란히 닭장 앞으로 갔다. 아버지가 닭 모이를 주고 내가 물 한 바가지를 넣어주었다. 활기찬 닭들을 보니 내 몸도 가벼워져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뒷밭을 묵혀 두었는데 올해는 콩을 한번 심어볼까 하셨다. 마당을 쓸던 내가 콩 종자를 사러 읍내에 나가보자고 맞장구를 쳤다.

 삶은 때로 지치고 힘들다.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침에는 일어나 각자의 일터로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밤과 낮의 경계는 쉼과 활기다. 그 사이에 소리가 있다. 그 소리 때문에, 비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벼 이삭처럼 아침을 맞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휴대전화 알람 소리 대신 멋지게 목청을 돋우는 장닭 울음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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