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마늘
  • 오병훈
  • 2022.10.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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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의 돌아보며 사랑하며] 오병훈 수필가

어제가 개천절이었다. 하늘님(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날이 바로 4355년 전 음력 10월 3일이다. 단군사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관한 기록이다. 그 때문에 주인공인 단군을 우리 겨레의 시조로 모시고 있다.


 우리는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날을 기념하여 해마다 제천행사를 열어 수확한 곡식을 바치며 하늘에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삼국사기'를 보면 '환웅천왕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들에게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3·7일(21일)만에 여자가 되었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고 싶다고 기도했다. 환웅이 웅녀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라고 기록했다.


 조선 세종 때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을 모신 뒤부터 국조로 모시게 되었다. 단군사는 민족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부터 우리 민족의 건국사라는 인식이다. 고조선은 기원 전 12세기 이전에 북경 근처의 롼허(蘭河) 서쪽을 경계로 하여 동북부는 헤이룽(黑龍江) 밖까지 이르는 만주일대와 한반도 전지역을 영토로 하는 동아시아의 대제국이었다. 역사상 실재했던 국가이므로 단군사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신격화 한 내용이며 단군은 개국시조라는 주장이다.


 단군사에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을 주었다는 그 마늘은 지금의 마늘이 아니라 달래일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백두산 일대나 한반도 부근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는 마늘이 자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서아시아 원산의 마늘은 우리 겨레가 그 곳에 살 때부터 늘 식용했던 것이라 동쪽으로 이동할 때 함께 갖고 왔을지도 모른다.


 마늘은 한자로 대산(大蒜)이라 한다. 그에 비해 달래는 작은 마늘이라는 뜻으로 소산(小蒜), 들에서 자라는 마늘이라 하여 야산(野蒜)이라 한다. 모두 강한 냄새를 가진 훈채로 생각했다. 


 이러한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동남부 건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마늘의 재배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왕조의 고분 벽화에서도 마늘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식용 또는 약용으로 이용한 역사는 아주 오래 된 것 같다.


 힌두의 신화에서는 인드라신이 아들이 없는 것을 한탄하다가 성선의 가르침에 따라 아내에게 성스러운 우유를 마시도록 했다. 그녀가 딸꾹질을 하면서 조금 흘렸는데 그 자리에서 마늘이 돋아났다. 바로 인도 마늘의 작은 줄기가 마치 우유 방울처럼 희고 동그란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에 유입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경 한 무제 때 장건(張騫)이 서역 정벌에 나섰다가 귀국할 때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언제 마늘이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마늘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늘을 먹는 우리 겨레의 심성은 삼동을 웅크리고 지낸 곰처럼 끈기가 있고 강하다. 외세에 꺾여도 끝내 떨치고 일어서는 승리의 민족이다. 짓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독한 마음의 씨앗을 품은 이들이기에 포기라고는 없다. 탁 쏘는 듯한 불같은 성격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를 향해 떨쳐 일어서는 용기를 지녔다. 불굴의 정신은 마늘 같은 강한 독성을 마음 밭에 고이고이 묻어온 까닭이다.

 

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마늘과 비슷한 양념으로 서양인들이 즐겨 먹는 양파도 있고 중국요리의 주재료인 파와 부추 같은 것도 있다. 이러한 채소들도 마늘과 같은 풍미를 지녔다. 그러나 양파와 파는 크기로는 마늘보다 푸짐하지만 매운맛이야 마늘을 따르겠는가. 대량 소비를 위해 매운맛을 빼고 개량하다보니 그저 달착지근할 뿐 양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파도 그렇다. 덩치가 크다고 음식의 맛을 가름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이 더 맵다는 것은 한국의 고추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 음식에 마늘이 없다면 맛을 낼 수 있을까. 특히 마늘과 고춧가루는 김치의 양념으로 빠질 수 없다. 마늘과 고춧가루가 있었기에 오늘날 김치라는 식품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먼 시조 할머니 때부터 먹어온 마늘을 빼고 어찌 한식을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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