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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흔적을 찾아서

일본 SAILOR  訓民正音 만년필. ⓒ이상원
일본 SAILOR 訓民正音 만년필. ⓒ이상원

  2007년 한글날을 앞두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만년필 제조회사 SAILOR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 만년필>을 99 자루 한정판으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었다. 뚜껑에 훈민정음 자모 28자, 몸통에 훈민정음 언해 서문이 각인돼 있는 그 만년필을 사서 보관 중이었는데 문득 그 만년필이 생각나서 꺼내 파란색 잉크를 넣고 한글, 한자(漢字), 영어, 일본어를 두루 써보았다. 사각사각 쓰여지는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며 새삼 한글에 눈길이 갔고 만약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문자를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세종대왕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여주의 양지 바르고 평온한 터에 자리잡은 세종대왕릉[영릉(英陵), 소헌왕후와 합장]엔 오후의 햇살이 드리우고 있었다.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영릉으로 가는 길 옆 잔디밭에는 세종 시대에 발명된 측우기, ‘앙부일구’와 ‘정남일구’, ‘자격루’, ‘혼상’ ‘규표’ ‘간의’ ‘혼천의’ 등 각종 천문 및 천체관측 기기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어진 임금님의 환한 얼굴이 그려졌다.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영릉 英陵). ⓒ이상원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영릉 英陵). ⓒ이상원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는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도 오가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세계 유일의 문자사용 설명서,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실록과 ‘훈민정음 언해본’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창제 과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몽골의 파스타 문자를 모방했다, 세종대왕이 변소에서 문창살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 등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훈민정음 반포 494년만인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원본)》이 발견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원본)》은 서예가 이용준이 발견하고 간송 전형필이 구입을 했다. 판매자는 그 책값으로 천원을 희망했으나 그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전형필 선생은 당시 서울의 기와집 열 채 값인 만원을 주었고, 소개해준 중개인에게는 수고비로 천원을 얹어 주었다고 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대부호로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유출되었을 수많은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전 재산을 털어 지킨 민족 문화의 수호자이자 문화독립운동가였다. 그의 나이 33세인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설립하여 우리 문화재를 보존했고, 현재의 간송미술관이 되었다. 간송은 수장품 중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며, 6ㆍ25 전쟁 중에는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항상 품에 지니고 잘 때도 베고 잤다고 한다. 해방 이후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사해 한글학회에 전달함으로써 문자의 창제자, 창제목적, 창제원리, 사용법을 알 수 있게 되었고, 한글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이상원

  《훈민정음 해례본》은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 중이며,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글’은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인류의 소중한 언어가 되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일과 문자사용 설명서가 있는 언어가 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이 집필한 <정음(正音)>편과 집현전 학사들이 집필한 <정음해례(正音解例)>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음편에는 ‘어제서문(御制序文)’과 ‘예의(例儀)’가 담겼고, <정음해례>편에는 28글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예시를 담은 ‘해례(解例)’와 ‘정인지 서문’이 담겨 있다. 정인지 서문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자, 창제 이유, 우수성 등이 담겨 있고, ‘해례’편의 공동집필자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8명임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글자인 훈민정음은 세종이 만들고 그것에 대한 사용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책자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


한글의 우수성

  다른 문자들은 모두 자연의 모양 등을 본 뜬 상형문자에서 유래하고 그것에서 파생되었는데, 한글은 세종대왕이 우리 언어에 맞게 언어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치밀한 연구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만든 창조문자이자, 과학적 발명품이었다. 

  발음 기관을 본떠서 기본자음 5개(ㄱ,ㄴ,ㅁ,ㅅ,ㅇ)를 정하고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덧붙여 자음 17개를 만들었다. 비슷한 소리는 비슷한 모양을 갖는 합리적인 체계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게 했다. 모음은 동양 사상인 천(天), 지(地), 인(人)을 형상화해서 ‘• ㅡ ㅣ’를 정한 뒤 센 소리는 획을 더하여 체계적이고 간단하게 11개의 모음을 만들었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 쓰고, 
초성과 종성을 함께 쓰는 방식으로 가로, 세로 어느 쪽으로도 쓸 수 있고, 뜻을 전하기도 좋고, 글자를 빨리 읽고 쓸 수 있게 했다. 영어 알파벳의 경우 한 글자가 여러 가지 소리(‘a’의 경우 7가지로 발음)가 나지만 한글은 한 글자에 한 개의 소리만 난다. 또 소리와 문자가 짜임새 있게 대응한다. 

  일본어로는 300여 개, 중국어로는 400여 개, 26개의 알파벳으로는 300여 개의 소리밖에 낼 수 없는데, 24 개의 한글 자모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최고 11,172개, 실제 발음으로 낼 수 있는 것은 3,172개라고 하니 다양한 결합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글은 소리와 글자 모양이 일치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다.’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언어 연구 학문에서 으뜸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 대학은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으로 세계의 모든 문자에 대해 순위를 매겼는데 한글이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태국에서 열린 문자 올림픽 대회를 통해 세계 27개의 문자를 분석 검토한 결과 1등은 한글이었다. 2009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말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채택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한글은 전 세계 문자 중 디지털(모바일)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문자로 각광을 받고 있다. 
컴퓨터 자판과 휴대폰 글자 배치판에서 글자 입력이 다른 언어에 비해 편리하다. 많이 쓰는 천지인 글자판은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낼 때 한글은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7배 빠르다고 한다.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음성인식기능에서도 탁월하다. 

  한글 자모 중 여린히읃(ᇹ)은 1527년에 최재진이 쓴 《훈몽자회》에서 사라졌고, 반시옷(ᇫ), 옛이응(ㆁ), 아래아(•)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빠지고 지금은 24자만 남아 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우리글이 훈민정음, 언문, 반절, 암글, 중글, 아랫글, 국문, 조선글 등으로 불려오다가 ‘오직 하나의 큰 글, 한나라 글’이라는 의미로 1910년대 주시경 선생과 한글학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한글날은 세종이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이 책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음력 9월 29일로 정하고 1926년부터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식을 가지다가 1928년부터는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뒤에는 1945년부터 음력 9월 10일을 반포일로 보고 양력으로 바꾸어 10월 9일에 기념식을 하게 되었다. 북한은 ‘조선글날”이라 하여 훈민정음 창제일을 음력 12월 15일로 잡고 그 날짜를 양력으로 바꾸어 1월 15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한글의 위기와 조선어학회

  훈민정음은 창제 이후 집현전 부제학인 당대 최고의 학자 최만리를 비롯한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1444년 집단 상소를 올려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세종은 반박하고 설득하며 언문청을 설치하고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에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게 했다. 또한 과거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을 넣고, 언문으로 된 책도 발간했다.

  1504년 연산군을 비난하는 언문으로 된 투서 사건으로 연산군이 언문 사용 금지령을 내리고 언문으로 된 책을 불태우라고 해서 언문이 한때 위기를 맞았다. 가장 큰 위기는 일제강점기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고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창씨개명까지 하게 했다. 그야말로 언어말살정책으로 우리말과 글이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그때 한글을 지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오늘날 한글학회가 된 조선어학회였다. 1908년 주시경 선생이 시작하고 1914년 주시경 선생 사망 후 그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로 한글을 연구하여 교육하고 사전 편찬 작업을 계속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년)’,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1940년)’ 등의 큰 업적을 이루어 지금 사용하는 한글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소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제는 회원들을 검거하고 사전 원고를 압수하고 강제 해산 시켰다. 이윤재, 한징 두 명은 옥사하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 5명은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이 ‘조선독립운동’이라는 죄목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광복 후 회원들은 즉시 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하였으나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4년 간 전국을 돌며 모은 원고가 없어져 큰 난관에 부딪혔다.

  다행히 1945년 10월 2일 서울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그 원고가 발견되어 사전 편찬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드디어 1947년 10월 9일 『조선말큰사전』 1권이 간행되었고, 1957년 10월 9일 『큰사전』 전체 6권이 완간 되었다. 총 어휘 수 16만 4,125개, 순 우리말 7만 4,612개(45.5%), 한자말 8만 5,527개(52.1%), 외래어 3,986개(2.4%)가 실렸다. 한국 문화사상 획기적인 대사건이었다. 조선어학회가 있었기에 갑작스럽게 맞은 해방으로 혼란에 빠진 우리의 교육이 빨리 정상화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앞서간 이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다. 


세계 속의 한글

  한글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류는 이제 글로벌 문화로 전 세계인으로부터 호평을 받고있다. 옥스퍼드사전에도 ‘한류(hallyu)’가 등재되었다. K-팝, 드라마, 영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아리랑, 태권도, 예능, 한식 등의 영향으로 이제 어디를 가나 외국인들 입에서 우리말 한두 마디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세계 260여 개소에 세종학당 진출, 한글을 제2 외국어로 쓰는 나라가 18개국, 한글학교가 전 세계에 1800여 개나 있다고 한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으로 줄임말 표현이 일상이 되었고, 신조어들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외국어 남용, 엉터리 외래어 사용 등 한글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언어는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모든 언어가 변하고 신조어가 생기듯 한글도 그러하다. 자음과 모음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수많은 글자를 만들 수 있고 한글이 소리글자로서 외국어를 소리 그대로 표현하는데 장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모국어는 제대로 지켜지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한글이 지구촌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사랑 받고 쓰여질 때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한글 교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한국은 훌륭한 한글 덕분에 문맹률 1% 이하의 세계 최고의 글자 해독 국가이지만, 문해력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중하위라고 한다. 문해력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의사소통과 갈등해소에도 필요하다.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종이책을 직접 소리 내어 읽고, 토론하고, 책의 내용을 베껴 적어 보는 것을 권하고 있다. 스마트폰만 켜면 원하는 책을 읽어 주는 편리한 디지털 세상에서도 여전히 책을 잡은 손은 아름답고 책을 읽는 눈은 빛난다.  


576돌을 맞은 한글날!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지켜지고 다듬어져 온 한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자의 사치! 그것은 시대를 앞서간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천재 언어학자 세종대왕의 외롭고 끈질긴 노력이 가져다 준 고귀한 선물이다. 이제 세종대왕의 선물을 더욱 아끼고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한글이 새로운 희망이다!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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