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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세네갈의 눈 /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그림책 '세네갈의 눈'을 펼치자 꽃무늬의 면지가 나타난다.


 페이지 사이에 책갈피 같은 태그, 그리고 작은 일러스트들이 실제로 꽂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덕분에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를 펼쳐본 것만 같다. 오래된 사진이 들어있는 낡은 앨범 같기도 하다. 특히 책에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그것들에 묻어있을 아련한 추억들을 궁금하게 하는 장치들이 된다. 아득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한 그림에 사로잡힐 때쯤 "내가 어렸을 때…"라는 화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가 의아하다.
 
"... 세네갈에 눈이 내렸어."
 8월에 그것도 아프리카 세네갈에 눈이 왔다니..., 일곱 살이던 화자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 한 가지 기억이 더 각인된다.


 구멍 난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뛰어나가 화자는 눈을 구경한다. 처음 느껴보는 추위였지만 내리는 눈은 은은하고 아름다운 꽃잎 같다. 그런데 저만치 노래를 흥얼거리며 울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된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세네갈의 눈'은 화자의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텍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들은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줄거리를 기대하던 나는 더 아리송해진다. 엄마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세네갈에 눈이 내린 것처럼이나 엄마의 울음은 아이에게는 낯선 상황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 강인한 모습이었는데 그날 본 엄마는 달라 보였을 테다. 그리고 눈처럼 여린 엄마의 모습를 보게 된 화자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회상한다. 


 '엄마는 작은 소녀처럼 보였어. 어쩌면 멀고 평화로운 다른 시간을 기억하는 중인지도 몰라. 다른 눈송이를 기억하는지도 몰라.'
 
 화자의 기억이라는 것이 눈이 내린 세네갈의 풍경이었을지, 아니면 '멀고 평화로운 다른 시간' 속의 추억일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러 방식으로 배치된 화면은 기억의 조각을 찾아 헤매는 듯 두서없기도 하고 퍼즐처럼 딱딱 맞춰지기도 한다. 다시는 내리지 않는 눈처럼, 다시는 오지 않는 엄마를 기억 속에서 찾아가는 여정은 그래서 더 진지하고 쓸쓸하다. 어쩌면 세네갈에 내린 8월에 눈은 엄마의 눈물이었까? 아이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을 물끄러미 따라가다 책 속으로 중학교 2학년의 어두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그리고 설핏 잠에서 깨고 본 엄마의 뒷모습이 흐리게 번진다. 엄마의 시선은 대문 밖이었을까? 아니면 밤하늘이었을까? 방문에 기댄 엄마의 어깨가 자꾸만 들썩일 때마다 나는 후회했다. 괜히 합창단에 들어가서 비싼 단복을 맞추는 나를. 수학여행은 고등학교 때 가면 되는 거지 굳이 중학교 때까지 가려는 나를 책망했다. 며칠 후 엄마는 모든 것을 다 해 주셨지만 한숨으로 별이 스러지던 날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먹먹해진다.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처럼 모호하고도 아름다운 '세네갈의 눈'은 기억과 망각, 말과 침묵,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들이 페이지에 가득하다. 선도 흐릿하고 배경도 주요인물의 모습도 선명하지 않다. 게다가 어떤 등장인물들도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그 미묘한 어긋남을 메우기 위해 저마다의 기억을 끌어올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애잔하고 슬픈 장면을 말이다.


 아득해지는 내게 마지막 페이지의 파랑새가 밝게 지저귄다. 분명 화자의 지금은 행복할 것만 같아 다행이다. 멀어져 간 화자의 엄마도, 이제는 별이 된 나의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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