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 골목

금병소

시가지 심장부로 깊이 더듬어 가다 보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시계탑 근처
진한 커피향 풍기는
가로수다방 명다방 터줏대감으로 앉아있고

거리마다 발딛기 버겁도록 북적이는 인파 속
맛스런 시 빚어내는 
이준웅 시인 최일성 시인 앞장서던 모습 
대열에서 보이지 않아

혹시나 어느 주막집에 앉아 술상 기울이고 있나 싶어
오늘 밤 원로시인 박종해 형과 함께
취기 앞세우고 술집마다 기웃대도 아무데도 없다

덧없는 세월 저만치 멀어져 가고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허탈만 남은 추억의 빈 골목
희미한 가로등 아래
유령처럼 검은 비닐봉지만 쓸고 다닌다

 

△금병소 시인: <문학예술>(2012) 신인상 등단 '지금도 고향에는'외 6권. 울산시협 올해의 작품상(2015). 울산예총 공로상(2017).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지나간 일은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일이 글쓰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금병소 시인은 '빈 골목'으로 울산시내의 터줏대감 시계탑 네거리를 살려내고 울산 옛 중심거리 성남동, 옥교동을 누비는 시인들의 낭만도 살려내고 있다.
 '혹시나 어느 주막집에 앉아/술상 기울이고 있나 싶어/오늘 밤 원로 시인 박종해 형과 함께 취기 앞세우고 술집마다 기웃대도 아무데도 없다'의 능청이 독자들의 가슴을 더 짠하게 한다. 이렇게 시인은 울산문학의 귀한 역사 한 장면을 살려내어 보인다. 그러다가 '허탈만 남은 추억의 뒷골목/희미한 가로등 아래/유령처럼 검은 비닐봉지만 쓸고 다닌다'며 '검은 비닐봉지'라는 표현으로 많은 것을 은유한다. 쓰다만 시인들의 글과 시인들의 거나한 농담들이 빈 골목을 쓸고 다니는 것 같아 오히려 서늘함에서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는 울산시의 대명사가 시계탑이 있는 성남동 옥교동이었다. 시내에 갔다는 건 그곳에 갔다는 말로도 통했다. 이쯤에서 나도 묻어 두었던 기억을 살려내어 본다. 울산이 고향인 나는 처녀 시절 울산의 중심지 성남동 거리를 종종 걸었다. 하여 이 시는 나에게도 옛날의 무늬를 어루만지게 한다. 가로수다방,명다방은 청춘이 모이던 곳, 연인들의 유일한 만남의 공간이었다. 시 '빈 골목'은 거기에서 수많은 시인들의 밤도 함께 했다는 걸 새삼 확인해 주며 지난 시간들을 추억으로 되돌아보게한다. 그 다방에서 간간이 감상했던 시화도 기억나 정감이 더 간다.
 
 시인은 지금 힘든 투병 중이다. 
 세월의 덧없음을 읽으며 메마른 회색빛 시멘트 위에 초록의 추억을 잡고 가을을 진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은 없지 않은가. 지나간 건 모두 그리움이지 않은가. 다만 아름다운 그리움이 되도록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채색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가을도 겨울도 피해 갈 수 없으므로, 하여도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서금자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