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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1.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1.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2.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2.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3.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3.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4. ⓒ송화영
호계공화국_송화영 첫 번째 전시 4. ⓒ송화영

울퉁불퉁한 바닥의 방 세 칸, 마루 한 칸, 부엌과 욕실이 있는 일층 단독주택, 쉰 살 먹은 일제 괘종시계의 늙고 정겨운 바늘 돌아가는 소리, 마루 한 켠을 비추는 졸린 햇볕, 소담하고 정성스런 텃밭, 그 옆에 놓인 오후의 나른함과 낡은 의자, 추어탕과 곰탕을 끓이던 큰 솥이 걸린 아궁이, 무엇이든 다 있을 것 같던 창고, 창고 옆 주렁주렁 널린 양파와 마늘, 삭은 빨랫줄과 집게, 시간에 익어가는 장독대.

  오래된 집에, 그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
  작은 키에 다부진 몸, 경쾌한 발걸음, 삶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고, 흥이 많으셨던 분.
  자식들을 누구보다 깊이 아끼시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셨던 분. 
  며느리와 일일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하길 좋아하시고, 맛있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것에 들뜨시고, 가벼운 나들이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시던 분. 
  텃밭을 기막히게 잘 가꾸시고, 예쁜 꽃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셨으며, 며느리가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시던 분.
  아주 옛날 일까지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총명함이 남다르셔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국 전쟁부터 한국의 현대사가 눈앞에 훤히 그려지게 재미나게 말씀하시던 분. 
  밖에서는 절대로 가족의 흠을 잡지 않고 세워주시고, 당신의 아들들이 좋은 옷을 입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시던 분, 손주들의 재롱에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하시던 분. 
  유품 속 어머님의 일기와 가요무대를 매주 순위대로 달력 뒷면에 적은 종이들, 노래 가사들,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적은 종이 조각들로 남은 이들을 짠하게도, 놀라게도 하셨던 분.

  어디에나 흔하게 있을 것 같은 50년 가까운 오래되고 낡은 집이 있다. 
그 집에는 꼬물꼬물 기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장난치고, 공부하고, 마음 설레고, 꿈꾸던,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세 아들의 시간들이 있다. 
장성한 아들들이 데려온 수줍은 며느리들과, 5명의 손주들도 오래된 집에서 새근새근 잠들고, 기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넘어지고, 울고, 재롱을 부렸던 시간들이 있다.
깊이 패인 주름과 무거운 다리로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고, 자주 들리지 못하는 자식, 손주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젊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그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흘렀다. 일상의 기억과 행복에 무뎌지던 어느 날, 갑작스레 어머니께서 떠나셨고, 집은 철거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어머님과 집, 시공간들이 무너졌다.

  인간의 시공간이 무력해지는 순간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프레임 안에 그 길고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을 가두는 것뿐이었다.

   늙은 부모님의 길고 긴 시간들, 아련한 아들들의 시간들, 많이 웃고 울던 며느리들의 시간들, 재롱을 부릴 나이가 훌쩍 지나 더 많은 시간들을 준비하는 손주들의 시간들의 조각을 붙잡아, 우리 모두에게 선물하려 한다. 

  무너진 집 위에는 새로운 집이 지어질 것이고, 그 위에 늙어갈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주들은 다시 그들의 시간을 쌓아갈 것이다. 아이들은 이 집을 ‘호계공화국’이라고 부른다. ‘호계공화국’은 삶과 죽음의 자국이며, 앞으로 쓰게 될 우리의 역사이다. 송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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