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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석남사. 김동균기자 justgo999@
가을이 깊어가는 석남사. 김동균기자 justgo999@

울주군 상북면 석남사 입구 일주문 주변으로 늦가을 정취가 가득하다. 영남알프스 맏형 가지산과 운문령, 문복산 등 산자락이 붉게 물들며 다가올 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절 입구 도로는 산길을 타고 밀양으로 넘어가는 24번 국도길이 나있지만 능동터널길이 뚫리면서 차량 왕래가 크게 줄었다. 80년대 후반 개통된 이 도로는 한때 울산에서 창원 등 서부 경남을 바로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석남사의 불화 산신도(山神圖)와 독성도(獨聖圖). 대곡박물관 제공
석남사의 불화 산신도(山神圖)와 독성도(獨聖圖). 대곡박물관 제공
불교에서 저승세계로 인도하는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에 매달린 동자를 상징하는 용가(龍架). 일명 악착동자이다. 석남사 법당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대곡박물관 제공
불교에서 저승세계로 인도하는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에 매달린 동자를 상징하는 용가(龍架). 일명 악착동자이다. 석남사 법당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다. 대곡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목조 업경대(業鏡臺). 염라대왕의 상징물인 업경대는 전생의 죄업을 비춰주는 거울로 불가에서 중생들에게 죄업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기위해 제작했다. 대곡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목조 업경대(業鏡臺). 염라대왕의 상징물인 업경대는 전생의 죄업을 비춰주는 거울로 불가에서 중생들에게 죄업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기위해 제작했다. 대곡박물관 제공

 

  험난한 산세 지형 아래 있는 석남사의 일주문을 지나면 동서 방향 일직선으로 700여 미터 시원스레 뻗은 길에 높다란 참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계절 마다 옷을 갈아 있는 숲길은 올때 마다 느낌이 새롭지만 가을 단풍이 찾아온 이 시기야말로 천년고찰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때다. 
 
  이 길은 걷는 것만으로 무거운 머리를 씻겨 내리며 힐링이 되는듯 하다. 길을 따라 계곡에 이르면 절집으로 들어서는 석조다리 청운교 위세가 산속의 거친 비바람을 거뜬히 이겨내기 충분하다. 교량 아래 넓다란 반석들은 신선들이 머무렀을 듯한 운치도 엿보인다.  

가을 낙엽이 쌓인 계곡과 석남사.

 

조사전에 모셔진 석남사 개산조 (開山祖) 도산선사의 영정.
법당 조사전(祖師殿)에 모셔진 석남사 개산조 (開山祖) 도의국사(道義國師)의 영정.

  통도사 말사인 석남사(石南寺)는 비구니 사찰로 석남사란 이름은 가지산(迦智山)의 또다른 이름인 석안산(石眼山)의 남쪽에 있다해서 지어졌다 한다. 절 입구는 사천왕문이 없이 2층 누각 '침계루' 아래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절집의 공간이 시작된다. 경내는 외부 사바세계를 가리고 가지산으로 활짝 열려 있는 듯한 공간의 배치가 스님 수행처로 최적지이다. 깊은 산 골짜기를 찾아 세워진 선종 사찰의 전통적인 가람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 
 
  석남사는 824년 신라에 처음 선종(禪宗)을 전한 도의선사(道議禪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당대 신라에는 의상대사의 활약으로 화엄종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당나라 유학 시절 달마의 선법을 깨우치고 37년만에 신라로 돌아온 도의선사는 세상에 인정 받기는 커녕 마구니로 비난을 받으며 이단으로 치부됐다. 뜻을 접은 그는 설악산 양양 진전사로 물러나 제자를 키우며 때를 기다리던중 불법이 구름처럼 덮인 땅 이곳 가지산 골짜기 찾아내 석남사를 짓고 참선(參禪) 하며 수행에 정진했다. 그리고 불교 경전 중심적인 교종(敎宗)과 달리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선종(남종선 南宗禪)의 기틀을 다지며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를 열었다. 

반야교와 절 입구 2층 누각 침계루.

  후대 제자 보조선사가 전남 장흥군 가지산 아래에서 보림사를 창건해 선종은 비로소 국내에 정착되며 대한불교 조계종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천년고찰이었던 석남사는 조선 임진왜란때 파괴돼 이후 중수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소실 됐으나 1959년 주지승 인홍스님에 의해 현재의 사찰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 앞 석가사리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호)은 창건 당시 15층 대석탑이었으나 왜란으로 파괴됐고 1973년 스리랑카의 한 스님과 인연이 닿아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해 남아 있던 탑신과 기단을 모아 높이 11m 높이의 삼층석탑으로 축소돼 개축된 것이다. 
 
  서쪽 극락전 앞에 2.5m 높이의 또다른 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은 원래는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진신사리를 모신 새로운 삼층석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극락전 앞으로 옮겨졌다. 
 
  석가사리탑은 안타깝게도 현재 사찰 정비공사가 진행돼 12월 초 까지 비계와 파란 투망에 가려져 제대로 볼수 없다. 

높이 3.5m가 넘는 통일신라 말기 양식의 석남사 승탑(보물).

  대웅전을 지나 절간 뒷편으로 가는 계단길에 오르면 아담한 돌담길이 이어진다. 이곳에 높이 3.5m가 넘는 통일신라 말기 양식의 승탑을 만날수 있다. 
 
  보물로 지정된 이 승탑은 도의선사 사리탑이라 전해지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길은 없다. 승탑의 팔각원당형 몸돌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형태가 두툼하게 새겨졌으나 마모로 형태가 명확하지 않아 사천왕 혹은 인왕상으로 추정할뿐이다. 아랫돌 2단형 하대석에는 사자상과 구름 모양이 세겨져 있다. 탑 지붕 옥개석 위의 상륜부 조각도 비교적 보전이 잘 돼 있다. 
 

석남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

  푸른색 가람 기왓지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 승탑에는 휴일이면 많은 신자들이 찾아온다.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비는 탑돌이 광경이 정겹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이 머무는 승탑 주변은 흐르는 시간도 알수 없이 아늑하기만 하다. 승탑을 빠져 나오는 발걸음에 대웅전 뒤편을 가보면 예사롭지 않은 길다란 나무틀을 만나게 된다. 
 
  스님들이 밥을 지을때 쓰던 길이 6.3m, 폭 72cm 엄나무 구유인데 500년전 간월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사찰을 둘러보며 머리를 홀가분히 비우고 빠져 나오면 일주문 맞은편에 상가들이 늘어선 식당에서 산나물비빔밥 한 그릇을 주문해 홀쭉해진 배를 채울수 있다.  글·사진=김동균기자 justg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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