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훈의 돌아보며 사랑하며] 목서
[오병훈의 돌아보며 사랑하며] 목서
  • 오병훈
  • 2022.11.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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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입동 소설도 지났으니 초겨울이다. 지난 주말 완도에서는 아직도 목서가 하얀 꽃을 피워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벌써 봄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서리가 내리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 나무. 모든 꽃들이 빛을 잃어가는 때 추울수록 향기가 짙어지는 강인한 꽃이 아닌가. 흰색으로 피는 은목서, 황금색 금목서, 목서와 박달목서도 있다. 중국에서는 주황색 꽃이 피는 것을 단계화(丹桂花)라 하여 더욱 귀하게 여긴다.

 달나라에서 자란다는 그 상상의 나무, 목서를 계수(桂樹)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느티나무를 계목이라 하고 일본의 경우 계수나무가 따로 있다. 예로부터 약재로 했으며 향기가 멀리 퍼지는 까닭에 구리향(九里香)이라 했고, 바위틈에 뿌리를 잘 내려 암계(岩桂), 계목(桂木)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질 때쯤이면 초록색의 긴 타원형 열매가 맺힌다.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열매는 겨울을 나고 다음해 가을 서리가 내리고 꽃이 필 때쯤 익는다. 1년을 가지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연꽃은 상쾌한 여름 아침을 느끼게 해 주고 목서(木犀)는 추월(秋月)과 중추명일(中秋明日)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또 목서가 갖고 있는 감미로운 향기 때문에, '내 서상 위에 올려놓고 싶은 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목서와 수선'이라고 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그윽한 목서향이야말로 서재에 어울리는 꽃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꽃을 보는 느낌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생활환경이 다르고 성장과정이 달라서 꽃에 대한 추억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임어당은 목서의 맑은 향이 가을 보름달처럼 투명하게 느낀 것 같다.

 목서는 사랑채에 심는 선비의 꽃이다. 옛 선비들은 목서를 지극히 아껴서 가지치기 같은 중요한 관리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물론 물주기 같은 하찮은 일도 아녀자나 종에게는 맡기지 않았다. 16세기 말 중국의 원중랑(袁中郞)은 그의 저서 '병사(甁史)'에서 나무의 물주기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꽃에 물은 주는 것은 취객을 깨우는 비처럼, 전체로 스며드는 이슬처럼 주어야 한다. 금방 길어온 맑은 샘물을 조금씩 뿌려주는 것이 좋다. 물주는 일은 텁수룩한 머슴애나 하녀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매화는 세상을 등진 학자에게, 모란은 단장한 예쁜 처녀에게, 목서는 총명한 아들에게, 연꽃은 요염한 첩에게, 국화는 고인을 사모하는 분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 좋다.'

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매화와 국화 같은 사군자는 선비의 손에 맡겨 그 성정을 취하기 위해서이다. 모란과 연꽃은 여성의 섬세한 마음이 젖어 들어 더욱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추위에 향기를 더하는 목서는 냉정한 판단과 총명한 지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때문이리라.
 옛 선비들은 목서꽃이 피면 차마 혼자 즐기지 못했다. 꽃그늘 아래 좋은 차를 준비하고 향기로운 술을 마련하여 벗을 불렀다. 때는 초겨울이라 바람은 상쾌하고 꽃향기 또한 머리를 맑게 했다. 게다가 싸늘한 달빛이 있어 꽃 빛은 더욱 맑고 신비스럽게 보였다. 술이 거나해 지면 시심을 돋우기 위해 '계수나무 꽃놀이(折桂催花)'를 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마주 보고 죽 둘러앉는다. 악사가 북을 치면 그 장단에 맞춰 목서 가지를 등 뒤로 옆 사람에게 전한다. 어느 순간 악사가 북 장단을 멈추면 꽃가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벌을 받게 되는데 시 한 수를 짓고 벌주 한 잔을 마신다. 목서의 본고장 중국 서호 지방의 멋스러운 풍속이다.
 목서는 자잘한 꽃이 핀다.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잎은 언제나 푸름을 자랑한다. 따라서 겨울의 메마른 정원을 녹색으로 풍요롭게 한다. 잎이나 꽃 뿐 아니라 목서의 달콤한 향기는 더욱 일품이다. 꽃에서 향수를 채취하고 꽃잎은 말려 향신료로 쓴다. 중국에서는 신부가 말린꽃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잠옷 속에 고이 간직한다. 목서향은 최음 효과가 그만이라니 사랑의 묘약이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호소하기에 이만한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목서의 잎은 차대용으로 끓여 마실 수 있고 꽃으로 술을 담가 마셨다. 옛 사람들은 목서를 전설 속의 계수나무처럼 진귀한 나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에서는 진사 과거를 열 때 시험관이 금·은목서 가지를 갖고 높고 낮은 것을 가렸다. 녹차를 끓일 때 말린 목서꽃 서너 송이를 함께 넣고 끓이면 향기로운 목서차가 된다. 꽃으로 술을 담가 마시거나 소금에 절여 반찬으로 한다. 꽃을 우려낸 물로 머리를 감으면 윤기가 나고 향기롭다. 중국 황실의 비방이다. 목서의 계절 옛 선비들의 멋을 살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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