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에 터를 잡고 비보로 가꾼 숲이 보여주는 풍경의 절정
길지에 터를 잡고 비보로 가꾼 숲이 보여주는 풍경의 절정
  • 김정규 기자
  • 2022.12.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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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U+여행] 포항 덕동문화마을
용계정, 솔숲과 더불어 덕동마을 풍경의 절정을 보여주는 호산지당.
용계정, 솔숲과 더불어 덕동마을 풍경의 절정을 보여주는 호산지당.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그 마을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성성한 푸른 솔숲과 수백 년 된 은행나무, 돌담길로 이어진 고택까지 길 위에서 만난다. 풍수에 따라 터를 잡고 나무를 심고 30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에서 서북쪽으로 50리 떨어진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 덕동마을. 길지에 집을 지어 집성촌을 이루었고, 마을 앞 물길에 재물이 빠져나감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 울울창창 소나무 숲이 됐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집은 쇠락해졌지만, 격은 더 깊어졌고 숲은 늙었지만 청정한 기운으로 여전히 푸르다.

덕계서당.
덕계서당.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조선시대 길지로 알려져 
여강이씨가 자리잡은 덕스런 마을
마을 앞 용계천의 물이 보이면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풍수에 기대
소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 수백년을 건너왔다
고택은 남루해졌지만 격이 더해졌고
소나무는 숲이 돼 푸르름으로 울창하다


#  300여년 이어온 여강이씨 집성촌
덕동마을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를 지낸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가 임진왜란 때 피란처로 처음 자리를 잡았다. 왜란이 끝나고 고향인 진주로 돌아가면서 손녀사위인 사의당 이강에게 집 등을 넘겨주었다. 이강은 회재 이언적의 동생 농재 이언괄의 4대손으로 고향인 경주 양동마을에서 50리 떨어진 이곳에 정착해 300여 년간 대를 잇는 여강이씨 집성촌의 토대를 마련했다.
 마을은 용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입구부터 소나무가 빽빽하다. 덕동마을 세 곳의 솔숲 중 가장 넓은 1,600여 평의 '송계숲'이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딘 나무들은 세월의 풍파에 따라 휘어지고 구부려졌지만, 찬바람 속에서도 여전이 푸르다. 안쪽으로 포항전통문화체험관이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덕연계곡에서 바라본 용계정.
덕연계곡에서 바라본 용계정.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  물과 숲을 배경으로 선 용계정
길을 따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용계정(龍溪亭·경북 유형문화재 243호)이다. 용계정은 자금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만든 벼랑 위에 우뚝하게 자리해 계곡을 거느리며 선 형국이다. 1546년 조선 명종 때 지어진 누각으로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건물로 팔작지붕을 5개의 대들보로 받쳤다. 마루 끝에는 난간을 달아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 운치를 더했고 부연(浮椽-처마 끝에 덧얹어진 짤막한 서까래)과 난간 천장 마루의 기법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용계정은 정조 이후 바로 옆에 세덕사(世德祠)라는 서원을 짓고 부속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여강이씨 집안에서 밤새 세덕사 사이에 담을 쌓아 화를 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계곡 너머 용계정 맞은편에는 정계숲이 정원처럼 자리해 울창한 숲 속에 앉은 느낌이다.
 용계정 주변에는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높고 웅장하다. 만추에 노랑빛으로 하늘을 물들였을 풍경이 아쉬움으로 가지마다 걸려있다. 

애은당.
애은당.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  큰 인물을 기원하는 호산지당
용계정 옆으로 난 소나무 숲길 아래 자리잡은 연못이 호산지당(護山池塘)이다. '산은 강하고 물이 적어서 못을 만드니/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라는 한시 표지석이 호산지당의 배경을 설명한다.
 이곳은 본래 1930년대에 세워져 20년간 운영된 덕동 사설학당의 운동장이었는데, 수려한 산세에 비해 물이 적어 인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풍수의 영향으로 수십 년 전 땅을 파고, 용계천의 물줄기를 돌려 채웠다. 연과 부레옥잠들이 여름을 추억하듯 낡은 모습으로 박제된 연못 위로 깊숙이 나무데크를 놓아 색다른 멋이다. 
 호산지당을 품은 숲이 '섬솔밭'이다. 한때 땔감이 모자라던 시절, 산중의 나무들까지 남김없이 벌목됐으나, 이곳은 여강이씨 집안의 노력으로 그 수난의 세월을 온전하게 건너왔다. 
 

사우정.
사우정.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  명당의 기운 온화한 사우정
돌담길로 이어진 고샅길을 걷다 보면 애은당, 여연당, 사우정 등의 고고한 이름을 가진 집들은 나타난다. 지나온 이력만큼 낡고 빛바랬지만, 그 당당함은 여전하다.
 농포가 처음 터를 잡고 후일 이강에게 물려준 집은 현재 그의 호를 따 사우정(四友亭·경북 민속자료 81호)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곳은 정문부의 조부 정언각이 인근 청송부사로 있을 때 지리에 밝은 이가 일러준 길지로, '활란가거 천하지낙양'(活亂可居 天下之洛陽)이라 불렸다고 한다. 당시 이곳은 송을곡(松乙谷)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송(松)자가 든 지명에서는 패해 기피한다는 소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피난지로 삼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7칸, 측면 1칸 반인 긴 '-'자 형태의 사랑채가 압도한다. 사랑채 양쪽을 돌아서야 정면 5칸, 측면 4칸인 '∏' 형태의 본채가 드러난다. 마치 사랑채가 안채를 호위하는 형국으로 본채는 농포가 지은 것이며 사랑채는 이강이 뒤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랑채는 1m 높이의 축대를 쌓고 세워져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살며시 사랑채 마루에 앉아본다. 초겨울 얇은 햇살에도 따뜻하고 아늑하다. 숲에 가린 물길은 보이지 않았고 마음은 편안하다.
 

용계정 통허교.
용계정 통허교.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 비보방편으로 만든 숲

덕동마을의 솔숲은 여강이씨 문중의 사당에서 용계천의 물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림으로 조성됐다. 기운과 재물이 빠져나간다는 풍수에 기대 물을 가리기 위해 심은 것이다. 1992년 문화마을로 지정됐고, 2006년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전국 4번째 기록사람마을로 지정됐다.
 편안한 걸음으로 마실 가듯 나서면 길은 급하지 않고 곳곳에 발길 잡는 볼거리로 오래도록 마을 안에서 서성이게 한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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