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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국 동국대 객원교수·전 청와대 대변인
정연국 동국대 객원교수·전 청와대 대변인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3일 검찰에 구속됐다. 서해공무원 이 씨의 피격사실을 은폐하기로 하고 관계부처에 관련 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법원에 의해 발부된 구속영장과 감사원의 감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이렇다.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 국방부장관 등을 비롯한 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됐다. 서해공무원 이 씨가 북한군에 의해 막 사살되어 불태워진 뒤였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런 구조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북한에 신변보호 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각처리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관계장관들이 모여 앉아 궁리를 한 결론은 '이 씨의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자는 것. 회의가 끝나자마자 국방부 장관은 새벽 3시경 국방부로 돌아와 자고 있는 실무자를 깨워서 60여 건의 문서를 삭제하도록 했다. 이 씨를 자진월북으로 몰기 위해서는 월북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을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박지원 국정원장도 자신이 직접 했는지 아니면 직원을 시켜서 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40여 건을 삭제했다. 해양경찰청장은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나오자 '나는 못 본 것으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정부의 최고위관계자들이 범행을 공모한 것이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어떻게 자국 국민을 자진월북자로 몰아 책임을 모면하려고 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월북자의 딱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가장을 잃은 슬픔에 더해 월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을 뻔한 가족,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승인을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밝혔다.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했다고 한다. 자진월북으로 몰고 자료를 삭제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 아닌가. 놀라운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내에서 모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 종전 선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신의 UN연설을 TV로 시청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까지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수시로 회의내용을 유선으로 보고받고 승인을 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수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국민을 월북자로 몬 사건이다.

이에 앞선 2019년 11월 4일 문재인 청와대에서 노영민 비서실장 주재로 안보실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틀 전 우리 해군에 나포된 '북한 선원'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 선원 2명의 강제북송이 결정됐다. 탈북자의 경우 통상 3개월이 걸리는 정부합동심문 절차는 무시됐고 관계부처는 매우 신속하게 서류를 조작하고 삭제해 일사천리로 강제북송 절차에 들어갔다. 회의 다음날 정부는 북한에 북송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고 회의 3일 뒤 선원들은 강제로 북에 넘겨졌다. 포승줄에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왜 이런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을까? 같은 달 25일 개막 예정이었던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의 강제북송' 결정 다음 날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상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담은 친서를 보냈다. 즉, 김정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강제북송을 결정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북으로 돌아가면 즉각 처형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돌려보낸 것이다. 헌법상 탈북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설사 우리 국민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옳은 일인가. 명백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또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문재인 청와대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했다는 점이다. 김정은에 초청장을 보낸 사실을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북한이 초청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북한 매체를 통해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북한 선원을 강제 북송한다는 사실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JSA의 한 장교가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언론사 카메라가 우연히 포착하면서 알려졌다. 하마터면 우리 국민 모두가 까맣게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비밀리에 진행한 일이 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서해공무원 이 씨의 월북몰이' 사건에 대해 본인이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밝혔듯이 북한선원 강제북송 결정과 '서류 조작, 삭제' 지시에 대해서도 승인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감사원의 서면질의에 대해서도 '무례하다'며 거부하고 수사 검찰에 대해 '도를 넘지 마라'고 경고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진실을 공개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과연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리고 관계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까? 이 또한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한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결코 나라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입니다. (중략) 한반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안보이자 평화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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