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와 견줄만한 대사찰 불구 몇몇 유물만 남아
통도사와 견줄만한 대사찰 불구 몇몇 유물만 남아
  • 김동균 기자
  • 2022.12.2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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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U+탐방] 울산과 나, 지역 문화재를 찾아서 - 7. 간월사터의 돌부처와 남북 쌍탑

신라 진덕여왕때 건립설 현재 유력
임란으로 소실 인조때 복원 후 폐찰
오랜세월 밭으로 사용되는 등 잊혀져
1960년대 무두불 발견으로 실체 알려
석조여래좌상·삼층석탑·금당 등 흔적
영남알프스 간월산 아래에 자리한 간월사 절터.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시 기념물 제5호
울산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로 가는 길에 첩첩히 들어선 모텔 건물 사이로 가려진 아담한 사찰이 보인다. 낮은 돌담 사이로 난 절 입구를 지나면 은행나무 옆에 아담한 법당과 돌부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절에 스님은 온데 간데 없고 법당도 자세히 보니 텅비어 있고 오직 불상만이 있는 보호각으로 고쳐 지어졌다. 
 
보호각 건너편에는 문화재를 지키는 컨테이너형 관리동과 문화재 관리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곳이 간월사지((澗月寺址·울산시 기념물 제5호)이다.
 
사라진 절의 창건 기록을 담은 관월사기(觀月寺記)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때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이라 전하나 1795년 언양읍지에는 자장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선덕여왕 때 통도사 보다 먼저 지은 절이라는 또다른 기록도 있다. 
 
어수선했던 신라와 황룡사 구층목탑 건립 등 굵직한 국책사업을 짊어진 자장의 당시 정황으로 볼때 읍지의 기록 보다 관월사기에 남은 진덕여왕 때 지어진 것으로 보는 학계의 견해가 좀더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지는 대목이다. 

 

금당터와 2기의 삼층석탑.
금당터와 2기의 삼층석탑. 김동균기자 justgo999@

# 1000여명 구유 등 큰 절 추정
절의 규모는 1,000여명 스님의 밥을 너끈히 지을수 있는 엄나무 구유가 이곳에 있었는데 500년전 석남사로 옮겨졌다고 하고 인근 암자도 12곳에 이른다고 하니 가까이 있는 불보사찰 통도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큰 절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진 법당을 인조때 다시 복원했으나 조선 후대 흉년이 몇해에 걸쳐 겹치면서 산문은 닫게 되고 수차례 홍수로 법당마저 땅속에 묻혀 그 흔적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나그네와 객승에게 푸대접 했던 간월사 스님과 두마리의 학이 돼 날아가버린 일주문 앞 깨어진 바위의 이야기를 담은 폐찰 관련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절의 이름은 간월사(肝月寺) 혹은 관월사(觀月寺) 등으로 불렸다고 하나 지금은 간월사(澗月寺)로 불려지고 있다. 해질녘 산 능선을 물들인 노을과 청량한 초저녁 달의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스레 연관 짓게 하는 이름이다. 
 
간월사 절터는 오랜 세월 밭으로 개간 되다가 1960년 초 한 농부에 의해서 머리가 없는 돌부처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났다. 불자들이 불상 머리도 이내 찾아 제자리에 앉혔다. 이 불상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다. 오래 동안 땅속에 있었던 몸체는 색깔이 머리보다 확연히 더 검게 보인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통일신라 양식의 석조여래좌상. 김동균기자 justgo999@

# 통일신라시대 양식 풍만·두툼·온화한 불상
통일신라시대 양식인 불상은 풍만하고 두툼하며 온화한 형상으로 불상 뒷편에 있어야 할 광배는 사라지고 없다. 불상 오른손은 항마촉지인 수인으로 석가모니상이다. 불상 아래 좌대는 제짝이 아닌듯 돌의 재질도 다르고 짜임새도 엉성하다. 하대석은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앉혔다고 한다. 불상을 완성체로 만든 불자들 조차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보호각 앞 입구에 화강암이 아닌 시멘트로 거칠게 만든 2기의 작은 석불상과 부도 1기가 나란히 놓여져 있으나 모두 기록들이 없다. 오른손이 잘려 나간 좌우 석불상은 불가에서 보기 힘든 익살스런 수염이 무척 인상적이다. 
 
보호각 뒤 서편 언덕으로 올라서면 진정한 간월사 절터의 공간을 만날수 있다. 1984년 동아대 발굴팀에 의해 그 규모가 드러났다. 금당은 정면과 측면 모두 3칸 규모로 동쪽으로 향한 법당 앞에는 중문, 동문이 놓여져 있었다. 보호각의 석조여래좌상은 금당의 본존불인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당터 남·북향으로 50여미터 거리를 두고 삼층석탑(울산시 유형문화재 제38호) 2기가 자리하고 있는데 북탑은 송림 사이에 가려 멀리서 잘 보이질 않는다. 남·북탑의 규모는 제법 크고 특히 2기의 1층 몸돌 4면에 불교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비(門扉)가 있고 문비 좌우에 굵직하게 양각으로 인왕상(금강역사)이 새겨져 있다. 
 
인왕상은 통일신라 불교 미술사에서 뛰어난 조각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채로운 것은 일부 인왕상은 특유의 근엄한 표정은 없고 해학적인 얼굴 모습을 띄고 있으며 역동적으로 표현한 가슴과 팔, 다리 등 전신 조각과 대조적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남탑에만 문비 안에 2개의 문고리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1988년 2월 이 일대가 '등억온천지구'로 지정되면서 빽빽한 숲 처럼 들어선 모텔은 꾸준히 첨단시설화돼 대부분 무인모텔로 탈바꿈해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돌부처는 오랜 시간 제집을 찾지 못하고 습기 훼손을 덜기 위해 법당을 개조한 보호각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5년 수립한 간월사 금당 건립계획안은 언제 실현될지 갈길이 까마득해 보인다.
 

삼층석탑인 남탑과 1층 몸돌 동남서북향(사진 위부터)에 새겨진 인왕상, 문비안에 2개의 문고리는 남탑에만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삼층석탑인 남탑과 1층 몸돌 동남서북향(사진 위부터)에 새겨진 인왕상, 문비안에 2개의 문고리는 남탑에만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 절터 복원시 알프스산악관광 명소 기대
등억리 입구에서 작괘천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면 넓은 주차시설과 규모를 갗춘 이름난 빵집도 문을 열고 오리고기와 민물고기 매운탕이 특미인 터줏대감격 마을 식당들 사이로 화려한 카페건물도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다. 
 
작천정별빛야영장, 등억알프스야영장에는 주말이면 사시사철 많은 차량 캠핑족이 찾고 있으나 통도사에 버금갔던 간월사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절의 서편 끝 자락에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석재들이 한곳에 수북히 쌓여 애타게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절터가 온전히 복원 된다면 즐비하게 늘어선 모텔만 기억되는 상북면 등억리 온천단지와 영남알프스 산악관광의 새로운 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 해보게 된다.  김동균기자 justg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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