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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토끼의 해' 희망찬 새해가 밝아 오르고 있다. 지난 1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뜨는 간절곶을 찾은 많은 해맞이객들이 힘차게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검은토끼의 해' 희망찬 새해가 밝아 오르고 있다. 지난 1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뜨는 간절곶을 찾은 많은 해맞이객들이 힘차게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오세영 '1월'전문  

 

 

여기저기 솟구치는 환호속에
깊은 바다 박차고 오르는 첫 해


뜨거운 기운 못 이긴 하늘은
이미 빨갛게 불타는 중


태양신이 세워놓은 소망이젤
우리의 기원들이 무지갯빛 그린다

 

간절곶 해맞이' 행사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카를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간절곶 해맞이' 행사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카를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이제 바다가 훤히 보이죠? 60초 전입니다." 사회자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여러분 마음속에 행운을, 행복을, 큰 복을 담아서 힘차게 셉니다. 이제 40초 남았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올해는 뭐라도 잘될 것 같습니다. 그렇죠?" "30초 남았습니다. 해가 좀 빨리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자, 카운트합니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아아아,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아아아" 패딩 안 가슴께가 후끈 달아오른다. 함성을 듣고도 심술쟁이 구름이 해를 붙들고 있다. 긴 20여 초가 지난다. "뜬다" "와아, 뜬다" "우와아" "와아아, 올라온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환호. 모두의 눈과 입이 활짝 열린다. "여러분, 올라옵니다. 이제 첫해를 맞이합니다. 올라옵니다, 올라옵니다, 올라옵니다. 다시 한번 함성!" 올해의 첫해가, 장엄한 새해가, 간절곶을 깨우고 한반도를 눈부시게 밝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거무스레한 구름을 뚫으며 아르테미스의 손톱 반달 같은 해가 오른다. 푸르다 못해 하얘진 빛으로 깊디깊은 심연을 끌어올린다. 우리의 환호에 힘입어 울산 바다를 박차고 오른다. 뜨거운 기운을 못 이긴 구름 위의 하늘은 이미 불타는 중이다. 이내 우리는 말을 잊었다. 한 덩이로 뭉친 너나없는 여망이 첫 빛에 가닿는다. 각자의 수호신이 핸드폰으로 가슴으로 둥실둥실 들앉는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눈에도 유모차의 강아지 눈에도 햇덩이 하나씩 들앉는다. 바다새가 부신 빛을 쪼며 날고, 수평선을 붙든 선박은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친 뱃노래를 멀리멀리 내보낸다. 5분여 후, 구름 한가운데에 든 해가 빨갛게 탄다. 거센 회오리에 덴 테두리가 이글거린다. 구름 위의 붉은 기운이 곧, 희고 노란 부채꼴 빛을 펼쳐 햇덩이를 끌어올린다. 산과 바다와 우리의 흰 이마가 모조리 빨려든다. 45억 6,721만 해를 살아낸,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저 광채! 설레고 떨리는 심장의 현이 가닿은 저곳은 삼라만상 모든 태양신의 캔버스. 간절곶의 태양신 헬리오스가 세워놓은 소망이젤. 소망이룸해를 향한 기원들이 그곳에 무지갯빛을 그리고 그린다. 


 
간절한 바람으로/ 두 손 모아 빌면/ 바다는 푸른 치마폭을 걷어 올려/ 날마다 불덩이를 하나씩 낳는다.// 온 누리를 지피는 불./ 감파란 물결에도 꺼지지 않는 불// 간절곶이 눈을 뜨면/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가/ 처음으로 그 불빛을 받아 깨어난다.// 이 최초의 눈 부신 빛의 소식./ 행복의 편지를 소망 우체국에 담아/ 온 누리에 빛으로 전송할거나.  - 박종해 '간절곶의 빛'전문    


 

'2023 울산 간절곶 해맞이 행사'가 1일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 공원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일출 명소답게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새해 첫 해돋이를 보려는 해맞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2023 울산 간절곶 해맞이 행사'가 1일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 공원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일출 명소답게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새해 첫 해돋이를 보려는 해맞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2023년 1월 1일 07시 31분 22초. 한반도 온누리를 지피는 첫 불을 뜨겁게 끌어안은 간절곶. 10만여 사람 물결이 간밤과 새벽의 어둠을 헤쳐나와 울산 바다에 눈길을 빠뜨렸다. 우체통에서 막 꺼낼 애인의 편지인 듯, 해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기다렸다. 드넓은 공원을 꽉 메운 행렬이 수평선을 길게 감싼 구름띠 같았다. 깜깜할 때부터 삼각대를 세웠을 고지대의 취재진 모습은 오롯이 풍경화였다. 안전관리를 위해 배치된 경찰과 공무원 등이 무려 1,500명. 바다에 면한 인도 변, 언덕배기, 산책로, 계단 등 위험지대는 단단한 펜스가 출입을 막았다. 3년 만의 해맞이 축제라 울주군과 울산시가 안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뉴스를 들은 터였다. 누구라도 최근의 참사를 기억하는 까닭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원의 떠들썩함이나 온갖 이벤트에도 아랑곳없이 새해는, 어제와 다름없이 먼먼 하늘길을 달려 간절곶 앞바다를 태웠다.     


 첫해의 행운을 안은 이들이 웃음 만발한 사진을 찍고는 무리무리 걸음을 재촉한다. 초대가수가 신나는 노래로 그들을 배웅한다. 새벽 이불을 걷어 젖히고 새해맞이를 나온 두 아이. "나는 이제 아홉 살이 될 거고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니?" 아이가 찰나 같은 한숨을 휴, 쉰다. "나는 며칠 전에 발바닥을 다쳤어요. 그래도 꾹 참고 태권도 단증을 꼭 딸 거예요. 또, 과학자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가 비디오게임을 하게 해주면 좋겠어요. 나는 닌텐도게임이 정말 좋아요!" 아이가 엄마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나는 포켓몬 띠부띠부씰(포켓몬빵에 들어있는 포켓몬스터 만화캐릭터 스티커)을 다 모으는 게 소원이어요. 그런데 돈이 별로 없고 띠부띠부씰은 너무 많고 비싸요." 대구에서 새벽 세 시에 차 시동을 걸었다는 가족. 뒷모습에 햇살 한 움큼 쏟아진다. 간절곶 새해는 소망이룸해이니 두 아이의 소원쯤 넉넉히 이뤄주리라.          

  
 
 해맞이 무대 앞을 어슬렁대다 부대시설이 마련됐을 법한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공원이 제법 한산해졌다. 울주문화재단과 울산MBC 운영본부관, 차박인과 밤샘인을 위한 대형 천막, 이벤트가 열린 해맞이관, 특산물 홍보관, 해안경계근무자대기실 등이 귀가하는 차량 행렬의 브레이크등같이 나른하다. 북적이는 저기는 뭐지? 우와, 떡국나눔행사장! 새벽 여섯 시 반부터라 기대도 안 했건만. 천막 안에 봉사자들 손놀림이 분주하다. "제일 안쪽으로 가면 천지빼까리라예." 떡국나눔 진행자의 떡국 호객에 늦은 발길이 속속 이어진다. 먹고 있어도 불어나는 새해 첫 끼니가 걸다. 평소 식사량의 두 배는 먹었나 보다. 그러곤 줄지어 선 푸드트럭을 못 지나치고 어묵꼬치와 뜨끈한 국물까지. 새해 첫배가 빵빵해졌다. 올해는 식복도 넘칠 모양이다. 


 우리 식구는 부푼 패딩을 두드리며 '빛과 바람의 정원'을 거닐었다. 커다란 오르골은 위엄찬 호랑이에서 귀여운 토끼로 바뀌었다. 간절곶을 향할 때의 어두컴컴한 새벽길은 그지없이 밝아졌다. 깊은 바다를 탈출한 지 두 시간째인 태양도 어제와 다름없이 희고 희다. 가장 높고 고귀한 존재로 여겨져 온 태양이 흰색인 것과 한민족의 흰색 숭배의식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의 이치로 본다면 태양은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등의 넓은 스펙트럼 빛을 내고, 우리 눈에 가시광선 파장이 들어오면 무지개색이 모두 합쳐진 흰빛으로 보인다. 뜨거나 지는 해가 붉은 이유는, 태양광선이 지구의 대기를 지나는 그 무렵에 파장이 짧은 푸른색은 흩어지고 파장이 긴 주황이나 붉은색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 때문. 희어도 붉어도 해는 오직 하나의 해. 웃어도 찡그려도 당신은 오직 하나의 당신.    
 

간절곶 인근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앞바다 명선도와 명선교 인근에 많은 해맞이객들이 찾았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간절곶 인근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앞바다 명선도와 명선교 인근에 많은 해맞이객들이 찾았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어젯밤에 묵은 나사리의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 임무를 마친 안전관리원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간다. 끝 모를 울산 바다는 새해가 내리꽂은 은빛 화살로 북적인다. 지금 내가 보는 햇빛은 17만 년 전의 빛이다. 태양의 핵에서 생성된 빛이 광구까지 나오고 방출되기까지 17만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8분 19초 전의 해이다. 방출된 태양빛의 지구 도달시간이 그만큼 걸려서다. 저 태양의 수명은 앞으로 79억3,100만 년 남았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우리네 한 생이라니…. 간절곶 첫해를 보려는 의욕으로 겨우겨우 잡은 펜션까지의 2km가 아득하다. 한해의 수고로움을 위무하며 큰맘 먹고 먹은, 간밤의 다금바리회 기운을 빌려본다. 올해는 양력설과 음력설이 1월에 함께 들었다. 새 달력을 받자마자 빨갛게 동그라미 쳐둔 설날 해. 달력 한 면에 두 번의 설날 해를 띄워야 하는 양력해도 음력해도 분주하겠다.

 

…//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설날 아침에'부분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문득, 김홍희 사진가의 글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간절곶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볼 행운을 놓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두 눈에 담은 행운. 간밤에 설친 두 눈의 잠을 불러내 오늘 아침 행운을 나누고 싶은 마음. 우리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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