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식 수필가
이종식 수필가

강 건너 저잣거리에는 닷새마다 남창 전통시장이 열리는 넓은 광장이 있다. 
 그 구석 한쪽에 세월을 간직하고 몇십 년 한결같이 대를 이어온 국밥집이 네댓 있다. 흔한 장식으로 멋을 부리거나, 밝은 조명으로 호객하지 않아도 꾸준히 찾는 이가 있어 연중 쉬는 날이 없다. 불볕더위가 비지땀을 뽑아내는 여름 한 철은 시원한 콩국수나 막걸리로 허기진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그 외에는 그의 단일 메뉴가 선지국밥과 돼지국밥이다.
 국밥의 곰거리는 소나 돼지 뼈가 주된 재료이다. 덤으로 엄나무, 제피나무 등 한약재와 함께 가마솥에 넣고 뭉근한 장작불로 16시간 이상을 세월을 정제하듯 폭 고아낸다. 그래야 뼈에서 나는 특유의 잡 내음이 없어지고 제대로 된 국물이 우러난다고 한다. 그 국물에 감칠맛 나게 삶은 고기와 갖은 양념으로 고명을 하여 푼푼한 뚝배기에 담아 다시 바글바글 끓여서 내어온다. 

 밥 한 끼, 술 몇 잔 마시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먹거리가 몇이나 또 있을까 싶다. 주인의 후덕함이 양념이 되고 정성이 맛이 되는 음식이라 그 매력에 끌려 이따금 나도 입맛을 다시며 그 맛을 찾아 나선다. 
 뉘엿한 볕뉘를 뒤로하고 덜컹거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장판을 덮어씌운 몇 개의 나무 탁자가 손님을 맞는다. 그 주변으로 주린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든 객들이 군데군데 앉아있다. 대부분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낮 동안 겪었던 저마다의 일상사를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 인생사가 결코 한가지 맛으로 표현할 수 없듯, 단순하지만은 않겠지.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인생의 애환과 눈물로 채워진 잔을 연신 비워대는 이도 있다. 언제나 허기진 인생 그 무엇으로든 포만감을 느낄 수가 있으랴. 그 난장판 속에서도 새악시 맞이하듯 주방에서 내어오는 국밥을 정성껏 받아 놓는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 부부에게 눈이 간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끓고 있는 남편의 뚝배기에 거품을 제거해주는 아내의 손놀림이 가볍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국을 먹이고 싶은 지극한 정성이리라. 

 한참을 시끌벅적하던 한 무리가 먹은 것이 흡족한 듯 는적거리는 몸동작으로 옅은 어둠이 내리고 있는 골목으로 사라진다. 뒤이어 중년의 부부도 꼬리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상에 지친 표정으로 들어왔던 이들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많은 위안을 받은 듯하다. 
 어둠 끝에 서광이 찬란하듯 선량하게 살아가는 필부필부들이 인생의 진국을 맛보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허기를 채운 객들이 뿔뿔이 흩어져 갈 즈음 육십 대 중반쯤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젖은 손을 앞치마로 닦으며 걱실걱실하게 말을 던져준다. 

 어서는 난전에서 고기를 팔았지. 그러다가 돈을 모아 허접스러워 보이지만 이 가게를 잡은 거야. 그 당시는 장날이 되면 줄을 섰지. 그 바람에 놀고먹는 남편 보탬이 없어도 세 남매 무난히 키워 출가시키고 가정을 지켰지. 하나 과오가 없었던 건 아니야. 돈을 벌다 보니 욕심이 과해서 허튼 곳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한 거야. 뼈아픈 일이지만 좋은 경험을 했어.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거뭇거뭇한 아주머니의 아슴푸레한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스멀스멀 연달아 나온다. 예전에는 국밥집이 연락 장소였어. 대운산 골짜기마다 사는 사람들이 장날마다 나와서 서로의 안부도 전하고 시집간 딸도 만나고 하던 곳이 이런 곳이야. 과거사를 들려주며 아주머니는 회상에 젖은 듯 아슴아슴하게 창밖을 쳐다본다. 그 눈길 머무는 저 하늘에 어느새 떠올랐는지 달빛이 그윽하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버린 요즈음 가공해 놓은 재료를 가지고 쉽게 장사를 할 수가 있지만, 그것은 본인이 용서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려낸 국물이 본인의 마음에 들어야 손님에게 내놔도 떳떳하고 안심이 된다고 한다. 
 예전과 비교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장작불 대신 가스보일러로 바뀐 것이 유일하단다. 그 외에는 물려받은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기에 맛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준다. 
 어디서나 전통음식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국밥 재료도 음식 재료상에서 가공품을 쉽게 구할 수가 있다니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쉽게 돈을 벌려는 유혹에 빠지다 보면 분명히 지키기 어려운 선이었을 것이다. 욕심은 부릴수록 한이 없기에 끓는 곰국 위에 몰려든 거품처럼 적당할 때 걷어내어야 진국을 맛볼 수 있나 보다.

 주방에서 살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인생의 진국을 푹 우려낸 아주머니가 국밥이 올려진 쟁반을 느실느실 내어 온다. 다른 반찬은 별로 없다. 김치 두 접시. 나물 한 접시에 양파 고추가 전부이지만, 깔끔하게 차려진 정성에 군침이 돈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뚝배기 가운데에 양념이 고명처럼 올려져 있다. 두어 번 젓개 질을 하고 나니 잔거품이 오종종하게 모여든다. 그것들을 스스로 걷어내며 어느 여인네의 잔정을 생각해 본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공깃밥 한 그릇을 국그릇에 욱여넣는다. 숟가락으로 쓱쓱 뭉개어 후후 불어 한입 가득 밀어 넣는다. 씹을수록 달짝지근한 밥맛이 구수한 진국과 함께 편안하게 넘어간다. 마음속의 헛헛함마저 달래지는 흐뭇한 순간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또 말을 이어 간다. 볼일이 있어 한두 시간쯤 문을 열어 둔 채로 가게를 비울 때도 더러는 있다고 한다. 그럴 때도 해를 입을까 봐 염려되지 않는다고 한다, 간혹 그럴 때 찾아와 막걸리 한두 병 거뜬히 마시고 천 원짜리 몇 장 끼워놓고 사라진 손님도 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시장에서 국밥을 만드는 과정부터 사람의 근본까지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국밥집에서 사람 사는 세상이 이처럼 조금만 더 투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반백이 훌쩍 넘도록 살아오면서 단맛을 찾아 헤맨 날이 수없이 많았다. 빠른 길을 찾기 위해 잔꾀를 부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모두가 한순간의 부질없는 욕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저 진득하게 기다릴 줄도 알고, 서로 조화롭게 사는 법도 깨우치며 푹 달여낸 곰국처럼 깊이가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