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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누구나 한 번쯤은 날 수 있으면, 하고 꿈꾼다. 창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을 보며 날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새들의 능력을 부러워한다. 자라면서 가끔 꿈속에서 날개 없이도 허공을 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비행기, 행글라이더, 열기구 등은 인간이 날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싶다.


 새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남편과 우포늪을 찾았다. 몇 년 전에 아이들과 동행했지만, 이번에는 단출하게 둘이 떠난 길이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때쯤이었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인근의 식당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전기난로 하나가 난방을 책임지고 있어 실내는 썰렁한 느낌이었다. 메뉴판을 살펴본 후에 '논고동 정식'을 시켰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논에 갔다가 논우렁이 여남은 마리쯤 손에 들고 오셨다.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깨끗한 물에 사는 논우렁이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논우렁이는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다. 


 주인이 끓여낸 따끈한 차를 마시고 있다 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논고동 무침' '논고동국', 정갈한 반찬 몇 가지가 함께 차려졌다. 김 가루를 뿌려놓은 커다란 대접을 내려놓으며 '논고동 무침'에 비벼서 먹으라고 했다. 밥을 덜어서 '논고동 무침'에 비벼서 먹으니 새콤달콤한 맛에 입맛이 돋았다. 


 '논고동국'은 담백하고 시원했다. 인공적인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고 들깨 향이 감돌았다. 반찬들도 자극적이지 않고 토속적인 맛이 좋았다. 식사를 끝낼 무렵에는 처음 들어섰을 때 공간이 주던 썰렁함이 사라지고 따뜻한 느낌이 올라왔다.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버드나무와 억새 등이 어우러져 스산한 겨울 풍경을 달래준다. 예전에 왔을 때처럼 수많은 새가 늪 중간쯤에 모여 있을 거라 상상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깜짝 놀랐다. 늪은 온통 꽁꽁 얼어 있었고,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곳에 수십 마리의 철새가 모여 있었다. 예전에 큰 군락을 이룬 새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던 때와 달랐다. 가운데 쪽으로 멀리 뒤편에 하얗게 보이는 물체가 있었지만, 새인지 새로 공사한 흔적인지 알 수 없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풍경과 달라 적잖이 실망했다.


 늪의 왼쪽으로 얼마쯤 걸어 들어가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늪 전체를 살펴보기로 했다. 전망대에는 그곳에 사는 새와 식물에 대해 알려주는 사진과 글이 양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창문 쪽으로는 망원경을 설치해서 늪 전체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전망대에서 보니 아래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구조물처럼 보이던 것이 늪 중간 뒤쪽에 모인 새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전망대에서 전체를 조망한 우리는 제방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제방으로 가면서 창공에서 활공하며 나는 독수리 떼를 보았다. 그 움직임이 크고 멋있어서 사진에 담았다. 버드나무 가지 너머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담느라 사진작가의 손길도 바빴다. 걸으면서도 궁금해서 독수리 떼를 쳐다보곤 했는데, 멀찍이서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영역 싸움을 하는 건지 독수리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까마귀가 함께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한두 마리 까마귀가 독수리 꽁지 뒤로 날아올라 부리로 쫓다가 떨어지곤 했다. 맹금류에 속하는 독수리가 까마귀에 당하는 모습은 기묘했다.


 제방에는 곳곳에 망원경을 설치해 두어 새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새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나마 얼지 않고 물이 있었다. 늪 전체가 꽁꽁 얼어 보였는데, 중간에 두 곳은 숨구멍처럼 얼지 않아서 새들이 밀집해 있었다. 
 큰고니, 따오기, 노랑부리저어새, 흰뺨검둥오리, 기러기 등 귀한 겨울 철새들이 졸거나 헤엄치거나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망원경을 통해 살펴보니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합창을 하는 듯 꽥꽥, 꾸루룩, 꾹꾹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좁은 숨구멍을 나눠 가지며 움직이는 새들의 날갯짓이 아름다웠다. 


 큰고니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차이고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떠오른다. 우아한 몸짓은 오래 볼수록 더욱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 찬바람도 잊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큰고니와 고니는 북녘의 캄차카 호반에서 몽골, 러시아의 동북부 시베리아에 걸친 광활한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한 후 가을쯤 우리나라의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겨울을 나고 있다고 한다. 살아내기 위한 그 먼 여행길을 감내하는 새들의 날갯짓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새는 날 수 있기에 인간이 부러워하는 종이다. 하지만, 우리는 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살아내기 위해 비바람을 뚫고 날갯짓하는 그들의 용기와 끈기를 함께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꽁꽁 언 우포늪에서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새를 사랑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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