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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고 울산문화예술회관 뜰에 벚나무 가지마다 탱탱한 봄물이 오르고 있다. 반갑다.

 울산문학 봄호에 실을 테마기획에 '슬도'와 '태화강'을 청탁했다. 편집실로 들어온 원고를 읽으며 저마다의 강과 섬에 관한 작품을 읽는다. 퍼내도 퍼내도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강과 바다가 재미있다. 자연이 개인에게 교감하는 순간은 각양각색이어서 그럴 것이다. 

 테마기획은 '울산에 산다'라는 특집으로 나가는데 여기는 울산의 자연, 문화, 그리고 울산을 상징하는 산업, 등의 내용을 다룬다. 반구대 암각화와 정자바다, 고래와 처용, 자동차와 배, 등에 이어진 기획이다. 

 울산에 살면서 슬도에 관한 작품이 없는 시인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혹, 작품으로 아직 발표하지 못했어도 가슴속에 품은 거문고 소리가 시로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슬'이 거문고 슬(瑟)임을 아는 순간 마음은 벌써 시를 품은 바람이 되어 슬도로 달려가고 있다. 

 슬도의 바람에도 봄을 품은 현의 움직임이 섬세해지리라. 저녁이 오면 그 소리 더 깊은 바다를 품고 홀로 고요해질 것이다. 슬도의 소리, 슬도의 바다는 울산의 소리 울산의 그리움이 아닐까? 그럴 때면 슬도에 관한 지인들의 시를 읽는다. 누구는 그 숭숭 뚫린 구멍에서 어머니의 한숨 소리를 듣기도 하고 누구는 파랗게 멍이 든 섬을 보고온다. 그리고 누구는 등대와 섬이 주고 받는 저녁을 그려낸다. 

 슬도는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라는 안내가 아니어도 슬도의 이름이 소리를 품고 있음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강세화 시인의 시 <슬도>를 변방동인지 37집에서 읽고 나니. 그가 가는 슬도 여행 버스에 동승하고 싶어진다.

 플라톤이 알고 있던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와
 우리 남쪽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고
 내 가슴 한쪽 끝에도 그런 섬 하나가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바위에 바람 새는 소리가 걸려 있는 
 그 섬을 찾아 나섰다.
 이름은 무색하고 지름길은 없었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걸어서
 반기고 기다리지도 않는 발걸음을 따라서
 맘대로 일상을 떠나는 기분에 빠졌다.
 파도는 밤중같이 길게 누워있고
 호기심을 둘러쓴 채로
 휘파람 소리를 따라 내면서
 미처 가까워지기도 전에 바다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올지 모르는 간절한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을 때우려고 연신 발을 구르고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라도 짬을 줄이려고
 부득부득 걸었다.
 인적을 찾아서 길을 따라 기웃거리고
 외로운 기색을 애써 감추고
 큰길가에 열려 있는 밥집에서
 외로이 허기를 달랜 적도 있었다.
 줄 서서 피어 있는 노란 꽃을 힐끗거리며
 겨우 아무렇지 않은 데까지 도달했다.
 달갑게 듣는 이 없어도
 흥감스럽게 콧노래가 나오고
 스스럽지 않게 외딴섬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저문 바다가 들썩대는 밤에는
 슬쩍슬쩍 화음에 끼어드는 여유도 생겼다.
 간간이 물결치는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 강세화 시 <슬도> 전문-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올봄, 슬도를 찾아간다면 이 시처럼 가보고 싶다. 욕심일까? “슬쩍슬쩍 화음에 끼어드는 여유"와 “간간이 물결치는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경지를 부러워한다면 과욕인가. 

 이렇게 힘을 다 빼고 슬도로 가는 여정을 노래할 수 있다니, 그 내공이 얼마인가를 생각해 보는 새벽이다. 그 흔한 거문고 소리도 없다. 억지스러운 은유도 없고 뭇 시인들이 시 속에 앞다투어 말하는 들풀 이름도 하나 없다. “줄 서서 피어 있는 노란 꽃"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매혹적이다. 힘 다 빼고 추는 춤처럼.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생이 보인다. 삶이라는 말이나 나이를 거론하지도 않음에도 세월이 성숙시킨 뭔가의 맑음이 아주 깊다. 시와 시인이 똑같을 것 같은 생각에 이 시가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온다. 

 플라톤이 말한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와 우리 남쪽 바다의 이어도, 그리고 시인이 가슴 한쪽 끝에 품고 사는 섬 슬도를 함께 본다. 문명 이전의 문명, 언어 이전의 언어, 소리 이전의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그곳, 잃어버린 태고적 근원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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