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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하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울산지역 대기업 사업장에 60년대 당시 산재사고로 희생(犧牲)된 이 땅의 영령들을 초대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죽지 않아도 될 생목숨을 빼앗겼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안전시설은 고사하고 작업조건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안전사각지대에서 오직 생계만을 위해 매달렸던 그들이다. 하루 24시간중 16시간씩 강행군을 하고도 변변한 잠자리마저 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이 파김치가 된 이들을 기다린 건 추위가 엄습하면서, 죽음의 사신이라 할 연탄가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집이었다. 건설현장마다 들어섰던 바람만 겨우 피할 정도의 독신자숙소나, 타지에서 직장 하나만 보고 가솔들을 데리고 온 근로자들의 아무렇게나 지은 벽돌집 역시 연탄가스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5남매나 7남매를 둔 가장으로, 한 집안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들보로 이런 고역을 고스란히 감내했다. 감정이 있는 영령들이라면 아마 저녁노을보다 진한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피를 토하고 땅을 쳐야 할 절절한 가슴으로 지금껏 죽어간 울산의 산재 희생자는 줄잡아도 4천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울산에 불기둥을 뿜어 올리기 시작한 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산재 희생자가 이 정도다. 여기다 산업재해와 같이 직접적인 사인이 아닌 작업관련 각종 질병으로 숨진 간접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1만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것이 울산지역 경제계의 추정이다.
 이들의 너무도 억울하면서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리고 OECD회원국으로서 국제노동기구(ILO)의 표준작업환경 기준에 손색이 없는 일터를 만들었다. 물론, 아직도 상당수의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산재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으로 작업환경이 괄목할 만큼 개선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작업환경을 대조해보면 우리의 초기산업화 당시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ILO가 밝힌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직무와 관련한 질병 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전세계적으로 2백만명을 훨씬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특히 산업화가 한참인 중국의 산재사고 피해자는 갈수록 눈 덩이처럼 늘어나는 등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엊그제 모습이다. 반만년 역사동안 질기게도 떼 내지 못했던 가난을 몰아내기가 그토록 깊은 신고(辛苦)를 감당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라고 해서 산재사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각종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하루 평균 7~8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제조업체에서의 사고보다 건설현장 등 옥외 작업에서의 산재사고가 대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지난날과 비교, 변화라면 변화다. 또 작업장의 안전시설미비와 같은 사업주의 책임보다 작업자 개인의 부주의와 실수가 부른 산재사고, 안전사고 비율이 높다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안전사고나 산업재해는 어떤 이유로도 추방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여기에는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것 못지않게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울산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주도하다 결실을 보지 못하고 중단되어 있는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재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령탑 건립의 1차적인 목적은 후세의 사람으로 예(禮)를 다 해 영령님들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데 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안일과 무신경, 나태를 질타하는 거울로서도 소중한 표석이다. 특히 이 나라의 산업수도를 자임하는 울산에서 이 같은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건립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은 물론이다. 건립 장소와 규모는 차차 하더라도 우선 시민공감대를 형성하는 출발부터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오는 4월28일은 국제자유노련이 정한 '국제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를 전후한 범시민협의체 구성에 나서는 것은 어떻겠는가. 다행히 울산상공회의소가 여기에 열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기념일에 호국영령을 위한 충혼탑과 함께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나란히 참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이제는 이 정도의 배려를 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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