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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의 역(驛)은 왕경과 지방간에 공문서의 전달이나 관용물품의 운송 또는 공무로 출장을 가는 관원의 왕래와 숙박의 일을 맡은 국가기관이다.
 울산지역에 역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였다. 신라 소지왕 9년(478년)에 우역(郵驛)을 두고, 역로(驛路)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유사에도 통일신라 때인 683년에 지금의 청량면 율리 영축산 근처에 굴정역(屈井驛)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때에는 전국의 22개 관도(官道) 가운데 울산은 금주도(金州道)에 속해 있었다. 범서 굴화에 굴화역(屈火驛)과 웅촌 곡천에 간곡역(肝谷驛), 삼남 교동에 덕천역(德川驛)이 있었다. 당시 경주에 포함돼 있던 두서 인보에는 잉파역(仍巴驛)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울산의 중심지 학성(鶴城)에서 뻗어나간 도로는 고대 울산의 중심지였던 굴화에서 갈라져 언양 방면으로 가면 덕천역이, 웅촌으로 가면 간곡역이 나온다. 그리고 언양의 남쪽에는 덕천역, 북쪽에는 잉파역, 동쪽에는 굴화역이 있었으니, 언양은 교통의 요충지였던 셈이다.
 조선에 들어와 울산은 금주도에서 황산도(黃山道)로, 다시 송라도(松羅道)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역은 고려 때와 같이 범서 굴화의 굴화역과 웅촌 곡천의 간곡역, 삼남 교동의 덕천역, 두서 인보의 잉보역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중구 약사동 평산마을에 부평역(富平驛)이 새로 설치됐다. 그들 옛 역 가운데 잉보역은 그 터가 남아 있어서 조금이나마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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