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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은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가지산에서 발원하여 중·남구 도심을 거치고 북구 동천과 합류하여 동해에 도달한다.
태화강은 국가하천, 지방1·2급 하천 등 58개 하천이 지류와 본류로 연결되어 흐르고 있으며, 발원지에서 중구 다운동 구삼호교간의 지방2급 하천구간(30.01Km)과 구삼호교에서 남구 매암동 울산만간의 국가하천구간(11.28Km)을 포함하여 총 하천연장이 41.29Km로 낙동강, 한강, 금강 등에 이어 전국에서 9번째로 연장이 긴 강으로 '태화강 일백리(一百里)'로 지칭된다. 발원지에서 내려오는 물은 태화강의 중류지점인 범서읍 사연리에서 세 지류가 합쳐져 제대로의 위용을 갖추게 되는데
국수봉 남쪽 중리에서 흐르는 국수천(중리천)을 받아들여 선바위(立岩)가 있는 백룡담으로 유입된다.

 

 ◇ 태화강의 역사와 문화
 계곡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선바위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굽이쳐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영리를 지나 굴화에 도달하여 넓은 들을 만난다. 여기에 형성된 벌판을 기반으로 삼한시대 굴아화(屈阿火)라는 별읍에 부족사회를 형성하였는데 뒤에 신라에 편입되어 굴아화현(屈阿火縣)으로 되어 울산지역의 첫 치소(治所)가 되었다.
 치술령과 국수봉·옥녀봉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척과 삼거리에서 합쳐져서 척과천을 이루어 다운동에서 태화강에 합류한다. 척과천은 원래 서천(西川)이라 하였는데 이는 현재의 북정동에 자리하였던 울산동헌(蔚山東軒)을 기점으로 하였을 때 서쪽으로 흐른다 하여 이름 지어진 것이었다. 척과천은 경사가 심하여 주위에 들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서천의 유입으로 하류에 삼호섬이 만들어지고 강의 동서 연안에 삼호대숲, 오산대숲과 태화들이 만들어 졌다. 이 물줄기는 태화루 바위언덕에 부딪쳐 용금소를 이루고 반대편에 사구(砂丘)를 만든 후 유유히 흘러 명촌교 부근에서 동천과 만나게 된다.
  동천(東川)은 경주시 천마산에서 발원해서 울산 쪽으로 흐르면 동천을 거쳐 태화강으로 흘러들고 경주 쪽으로 흐르면 형상강이 된다.
 태화강이 동천과 합류하는 지점은 모래의 퇴적량이 많아 모래톱을 이루면서 아래로 흐르다가 바닷물이 유입되는 하류에 접하게 되면 모래섬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도섬과 조개섬 이었는데 1996년 현대자동차 쪽 강변도로인 아산로 건설 때에 모두 준설되어 사용되었다. 조금 아래쪽에는 염포부두, 예전부두에 이어 울산만에 이르는데 이곳이 울산항이다.
 태화강이 흐르는 일백리에는 총 94점의 많은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고, 이중 국보 2점, 보물 5점, 사적 및 명승 8점 등이 있다. 태화강 유역의 대표적 문화재는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 공룡발자국 화석 등 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서 제작되었으리라 추정되며, 새겨진 바다동물은 고래, 물개, 거북 등이고 육지동물은 사슴, 호랑이, 멧돼지, 개 등 이다.
 동물모습과 사냥 장면의 표현과 사물의 특징 묘사로 미루어 보아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 보인다. 천전리 각석의 상부는 면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선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가 있고 하부에는 300여자의 명문(銘文) 등이 새겨져 있다.
 상부의 마름모꼴 무늬, 둥근 무늬, 우렁 무늬,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부의 기마행렬, 배의 항해모습, 용, 말, 사슴그림과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신라 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천전리와 대곡리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전의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한실마을의 쇠부리터, 작천정, 선바위와 백룡담, 오산대밭, 학성과 학성공원, 반구정과 구강서원, 염포 개항지 등이 있다. 이러한 문화유적들은선사시대 이래로 태화강을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이 생활하여 왔던 생활상들을 보여주는 것들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 태화강의 자연
 태화강은 민물고기의 천국이자 건강한 생태계의 보고였다.
 태화강에는 연어, 은어, 황어, 잉어, 붕어, 가물치, 메기, 장어, 모래무치, 모치, 새우, 지름쟁이, 꼬시락, 참게 등이 있고 들판에는 미꾸라지, 논고동, 갈밭 게들이 있었고, 패류로는 태화강 하류에 재첩 조개가 풍부하게 잡혔다. 그리고 이들을 먹이로 하는 고니, 청둥오리, 백로, 왜가리들이 날아들었으며 강변에는 푸른 대숲과 널따란 갈대밭이 영남의 절경을 만들었다.
 태화강에 산란을 하기 위해서 바다에 살던 연어 떼가 돌아오면 울산 사람들은 조각배를 만들어 타고 예리한 창을 손에 들고 연어를 쫓았다. 봄이 되면 황어 떼가 산란을 위해 태화강을 찾았다. 봄비가 내려 태화강의 물이 뿌옇게 되면서 수위가 불어나면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어 떼들이 강물을 따라 치솟아 올랐다.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렸다가 투망을 던져 황어 떼를 잡아 올리고 태화강 연안 마을에는 황어 풍년이 들었다.
 태화강에는 잉어, 붕어, 참게, 가물치, 장어, 꼬시락 등 민물고기가 풍부하였고 울산 사람들은 이들을 잡아 올리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정겨운 삶을 살았다.
 울산시민들이 기억하는 태화강은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더운 여름에 멱을 감던 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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