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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를 생각하면 '세계문화의 중심지, 유행의 중심지' 라는 이미지가 퍼뜩 떠오른다. 뉴욕시가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1958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전시공간 개념을 탈피한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건물로 인해 신축당시 전시공간으로써의 역할 수행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미술거장들의 작품보다 미술관 건축물자체가 관람객을 유치하는 데 큰 몫을 했고, 뉴욕시가 문화관광의 메카로 거듭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적이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에서도 일어났다. 빌바오는 15세기 이래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 등이 몰려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였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빌바오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1991년 바스크 정부는 주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 큰 결단을 했다. 빌바오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이라 판단하고 1,000억 원을 투자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조선소가 빠져 나간 자리에 유치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은 건축물은 한해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을 방문하게 했고 관광객들이 먹고 자고 물건 등을 사며 쓴 돈이 310억 페세타로 구겐하임 미술관과 관련된 소비들이 바스크 지역경제에 1년간 1억6,000만달러(1,600억원)의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의 빌바오는 미래가 불투명했던 공업도시에서 로마와 비교될 만큼 밝고 활기찬 문화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이러한 빌바오의 기적을 보고 뉴욕 타임스는 '문화는 이제 더 이상 권력의 장식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권력인 시대' 라고 평가했다. 기존의 건축형태와 공간 개념을 깬 조그마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 시민들에게는 이제 그 어떠한 것들보다 위대하고 소중한 것이 되었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건축가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 동안 건축산업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한국 경제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일각에선 선진 외국처럼 건축물들을 경제활동의 결과물로 보는 시각보다는 그 시대의 문화와 철학이 표현되어 있는 예술품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나타났었다. 그러나 최근 건축계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건축산업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와 건축경기의 장기 침체로 인해 건축환경의 토양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건축 현장에서 건축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건축가들의 환경이다. 건축을 문화로, 건축물을 그 시대상을 반영한 예술작품으로 여기는 문화 창조자로서의 열정이 건축가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일반인들의 건축에 대한 태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말 하지만 점점 무심해져만 가는 듯하다. 그래도 과거에는 건축을 문화로 인식하고 건축가들의 작업과정을 이해하는 일반인들의 비율이 적으나마 피부로 느낄 정도는 됐었다. 지금은 그 비율이 바닥에 온 것 같다.

 울산은 타 도시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 문화보다는 산업이라는 아이콘이 더 큰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일인당 국민소득이 전국 1위인 울산의 위상에 걸맞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 유감스러운 심정이며 한편으론 책임도 통감한다. 그러나 이것이 건축인들만 각성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빌바오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울산시민들의 의식전환과 정책을 결정하는 행정관청의 적극적인 의지 없이는 빌바오의 기적과 같은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심지어는 이러한 것들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앞에서 언급한 건축가들의 의식도 변화될 수가 없다.

 울산은 산업도시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생태도시, 문화도시 등과 같은 아이콘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참신하고 기발한 사업을 발굴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빌바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울산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모티브다. 변화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울산이 처한 환경에서 이것은 절실한 문제다. 비록, 보이지 않는 투자와 누가 알아주지 않는 열정이 필요한 일들이지만 하루 빨리 빌바오와 같은 기적을 울산에서도 경험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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