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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918~1392) 신앙심에 의해 그림으로 표출된 불상 즉 고려화불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고려불화의 본래 명칭이다.
 고려화불은 송나라와의 활발한 교역으로 안료를 도입해 많은 화불을 조성한다. 화불조성의 기법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순수 모방에서 벗어나 고려의 독창성과 지극한 불심의 정신세계에서 조성되어지는 화불은 아름다움을 더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 심을 자아내게 한다.


 화려한 화불을 그리는 안료는 청, 적, 백, 흑, 황 즉 오방을 가르키는 단순한 천연광물질 안료인 석채를 아교에 잘 개어 화견에 채색을 했다. 특히 색을 혼합하지 않는 단순채색으로 색이 혼탁하지 않고 밝게 표현을 했다.
 그리고 배채법을 사용해 채색이 두껍지 않고 안료가 화견에서 박락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했으며 천의에는 갖가지 문양을 정교하게 그리고, 그림 의윤선은 금으로 사용해 화려함을 표현했다.
 고려의 화공, 화사 등 수많은 선인들에 의해 조성된 화불은 고려 500년사에 많은 양이 조성됐으나 고려가 멸하면서 배불정책과 전란, 잦은 외침에 모두 상실, 반출되어 일본이나 외국의 박물관 수장고에 있고 국내에는 10여점이 남아있다.
 종교와 종교를 표현하는 종교미술은 사람들을 피안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고 상처난 인성의 쉼터가 됐다. 그러기에 어떠한 종교라도 최고의 진리와 최상의 믿음은 이간을 위하는데 그 숭고한 뜻이 있는 것이다.


 로마교황 율리우스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바티칸 시스티나 천정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해 세계 불멸의 명화가 되었고, 미켈란젤로 역시 신을 대신하는 최고의 화가로 남아있다.
 고려화불 역시 국가적인 변란에서 국가를 지탱하고, 왕권의 다툼에서 왕위를 지키기 위해 경전을 사경하거나 화불을 조성했다. 중생들의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아미타불, 지장보살, 미륵불, 약사여래불에 의지했고 소원을 바라는 염원을 관세음보살, 나한신앙에 의지하게 함으로써 중생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어 주었다. 또한 부지불식간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한 방편도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고려화불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들이 옛 고려화불을 보고자하는 절실함을 재현 및 부활한 화불로 갈증을 해소시키고, 잃어버려 천년의 잠에서 깨어 다시 천년을 이어 갈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이고 인간만이 문화를 이어 갈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려화불이 전승과 계승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며 많은 이들이 화불을 제작해야하나 다음과 같은 인성이 기본 되어야 진정한 불모로써의 자격이 될 것이다.


 부처님의 형상인 32상 80종 호를 토대하되 고화를 많이 감상하고 검증을 통해 표본으로 삼고, 오랜 시간 기법을 연마해야 할 것이다.
 고려시대상과 역사성으로 화불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불교의 진리를 터득하고, 수많은 경전을 탐닉해 진정한 부처의 내면을 알고 나서야 형상을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 한 것은 조성자의 자세다. 바른 신심과 자비와 포용 희생정신을 겸비해 선정과 무아의 경지에 들 수 있어야 하며 화불의 원력과 대 자비심을 심화시켜 화불로 승화시켜야 한다.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치성과 자긍심을 갖추어 용기와 위용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부활된 고려화불은 잊혀져 망각된 민족문화유산을 상기시키고 물질 만능시대 타락된 인성의 아름다운 쉼터가 되고, 불교의 장점인 대 자비심이 충만해 고통 받는 중생들을 피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한나라의 문화는 곧 민족의 얼인데 우리는 우리의 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웃나라에 빼앗기고 잃어버려 700년을 살았다.
 이제 우리 것을 찾고자 외롭고 힘겨운 30년 세월을 일념으로 화두삼아 정진해 조성에 몰두하며 세간의 삐뚤어진 혹자들의 잘못된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수많은 전시회와 국제 학술대회 등 홍보에도 노력을 해 많은 이들이 고려화불 하면 쉽게 이해 할수 있는 계기점이 됐다.
 이제 어렵게 부활한 고려화불에 대한 올바른 관심과 우리것을 다시 찾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노력을 한다면, 우리 후손에게는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을 다시 찾는 기회가 올 것이며, 오늘날 물질이 풍부한 이즈음 우리가 해야 될 절대적인 사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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