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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은교>로 다시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소설가 박범신.
#작가소개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태어났고, 강경읍 채산동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전주교대, 원광대학교,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여름의 잔해>로 당선, 데뷔했다. 초기엔 <덫> 등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고 이후엔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에 이어 《풀잎처럼 눕다》등 베스트셀러를 발표, 인기작가로 각광받았다.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회자되는 이 시기 작품들은 수백만 권 이상 팔렸으며, 20여편 넘게 영화, 드라마화됐고, 노래, 연극 등으로 재창조됐다.


 1993년 문화일보에 장편《외등》을 연재 중 돌연 절필을 선언, 3년간 침묵했다. 이후 그는 히말라야, 아프리카, 유라시아, 중국을 종주했다.


 1996년 고행 끝에 "나를 새로운 작가로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새 출발은 평론가 백낙청의 말 그대로 "괴로운 절필 끝에 박범신이 펜을 든 것은 우리 문단의 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최근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 출간한《은교》를 발표하면서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명지대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등을 받았다.

#에피소드
2010년 박범신은 네이버 블로그에 방 하나를 만들었다.


 애초의 문패는 '살인당나귀'. 인터넷 연재소설의 포문을 열었던 『촐라체』 이후 많은 작가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소설 연재를 펴나가고 있다.


 2010년 그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바로 자신의 블로그에 어디에도 발표한 적 없고, 독자들에게 선보인 적 없는 미발표소설의 연재를 시작한 것. 정해진 형식도 분량도 없었다. 개입하는 출판사도 편집자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만큼만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독자와의 직거래,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순정한 글쓰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바로 은교다.

#최근 인기작
평생 원고지를 고집했던 작가가 처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쓴 소설 『은교』. 과연 어떤 소설일까.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를 살짝 엿보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됐다.


 Q변호사는 이적요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했으나 막상 노트를 읽자 공개를 망설인다.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한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작가 서지우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자신을 "할아부지"라고 부르며, 유리창을 뽀드득 소리나게 닦는 은교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경험못한 '청춘'을 실감하기도 했다.


 한편 서지우는 은교를 바라보는 이적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갔다.


 정에 넘치던 사제지간이었던 둘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열등감과 질투가 뒤섞인 채 유지된다.


 그리고 서지우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이적요는 생명력을 잃어갔다. 이적요는, 정말 서지우를 살해했던 걸까. 이적요는, 정말 한은교를 사랑했던 걸까.


 <은교>의 키포인트는 다름 아닌 '갈망'에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이적요를 핑계 대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다는 작가에게 '갈망'이란 단순히 열일곱 어린 여자애를 탐하는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갈망은 이룰 수 없는 것, 특히 사랑의 갈망은 보다 근원적인 감정 아닌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엉켜 있는 사랑이 실타래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연애소설에 국한시킬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인가.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욕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작가는 계속해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가 고유하게 받고 있는 에너지와 욕망이 있어. 그걸 어떻게 해서든 사용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글로 풀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쓰니까 그래도 내 욕망을 공깃돌 갖고 놀 듯 핸들링하지 않냐. 나는, 소설이 없었으면 무슨 나쁜 짓을 했을지 모를 사람이야. 그것만은 분명해"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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