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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전국아마추어복싱 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48㎏급 결승전에서 이시영은 아쉽게 박초롱(18·전남 기술과학고)에게 4대 10으로 판정패했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단막극 복서역 소화하기 위해 체육관 찾은 게 입문동기
국가대표 선발전 48㎏급 결승서 여고생 복서에 판정패
평소 배우활동하면서 장소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연습
"다음 대회 땐 더 강한 모습 선보이겠다" 당찬 결의 보여

배우 이시영 권투와 사랑에 빠졌다. 이시영의 '권투사랑'이 인기를 잃어가며 쇠락의 길을 걷던 한국복싱에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 11일 울주군 울산경영정보고 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겸 2013 복싱 국가대표선수 선발전이 열린 현장에는 권투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이시영이 경기에 출전하는 탓에 취재열기도 뜨겁다. 잠시 후 모든 이들이 기다리던 여자 48㎏급 결승(4라운드)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이시영이 긴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냘픈 몸으로 링위에 선다는 것이 애처롭기도 하다.

#이시영은 왜 글로브를 택했나
이시영은 2010년 7월 MBC베스트극장 단막극에 복서 역할을 맡게돼 역을 소화하기 위해 대치동의 홍수환 스타복싱체육관에 대본을 들고 찾아온 것이 복싱 입문동기이다.
 
비록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의 제작이 무산됐지만 꾸준히 복싱 연습을 한 그는 전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과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대회 등 5개 대회에 나와 8승1패의 성적을 거뒀다.
 
복서로써 환갑의 나이에 처음 복싱을 시작한 이시영. 그가 복싱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링위에 섰다.

#한발 물러선 국가대표의 꿈
이시영은 11일 전국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겸 2013 복싱 국가대표선수 선발전 여자 48㎏급 결승(4라운드)에서 박초롱(18·전남기술과학고)에게 4대10으로 졌다.
 
키 168㎝의 이시영은 긴 팔을 이용한 공격으로 1회전과 준결승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선 48㎏급 국내 최강자인 박초롱에게 수차례 안면 유효타를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이시영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져 아쉽다"며 "다음 대회에선 더 강한 모습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이날 경기에서 경량급 선수로는 장신에 속하는 이시영(169㎝)은 자신보다 키가 작은 박초롱과 리치(공격 거리) 싸움에서 유리했지만 박초롱은 빠른 발과 저돌적인 공격으로 1라운드 내내 이시영을 몰아붙였다.
 
2라운드에서도 이시영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박초롱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장기인 긴 리치(공격 거리)를 이용한 왼손 스트레이트는 써볼 겨를이 없이 경기가 마무리 됐다.
 
3라운드에서도 이시영의 열세가 계속됐다. 이시영은 클린치(끌어안기)를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 했지만 마지막 4라운드서도 코너에 몰린 이시영은 결국 패했다.
 

   
▲ 이시영이 결승에서 만난 박초롱과 2라운드에서 일전을 벌이고 있다.

한편 이시영은 지난 7월 제 41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제 93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우승, 국가대표에 도전했다.

#"다음경기는 이길 것 같아요"
이시영은 "다음에는 (박초롱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회만 준다면 또 열심히 하겠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면서 "이번 경기는 새로운 시작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 경기에 대해서, 저 스스로에 대해서 아쉬운 것뿐이지 이기고 진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시영은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약한 것 같다"면서 "더 강해져서, 실력 다듬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복싱 선수 활동을 계속할 건가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요"라고 힘차게 답했다.

#화보촬영 해외출장 중에도 원투
경기 후 이시영을 만나 얘기를 해봤다. 그는 입문 당시 드라마 역을 소화하기 위해 만난 코치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저에게 신체조건은 좋다고 하셨어요. 키(168cm)에 비해 리치(팔 길이)가 길고 게다가 사우스포(왼손잡이)라 복서로써 유리한 면이 있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평소 체중(53kg) 그대로 시합에 올라도 될 만했지만, 운동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냥 날씬한 배우의 몸이라 근력은 형편없었다"고 당시 코치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는 일단 줄넘기와 잽잽 원투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시영은 "극중 상대선수이자 이시영을 이기는 일본선수 역은 체육관에서 3년째 복싱을 배우는 대학생이 맡기로 했었다"고 말한다.
 
이시영은 시간이 지날 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함을 몸소 느꼈다고 한다. 그는 "체육관에서만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배운 내용을 집에서도 꾸준히 연습해서 마스터해왔어요"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체육관원들이 복싱 3년 배운거랑 별 차이가 안 나 보인다고 말하곤 해서 오히려 상대역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파리로 화보 촬영을 가느라 체육관을 일주일 이상 못 나온적이 있었는데 그는 호텔방에서 시간날 때마다 글러브 무게의 아령을 쥐고 복싱 연습을 했다고 한다.

   
▲ 경기를 마친 이시영이 취재진에게 다음 경기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드라마 촬영 취소된 뒤 대회출전 자청
이시영은 직접 보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맹렬하게 연습에 매진하니 당장 체중에 변화가 왔다고 말한다. 그는 "시작한지 한달 만에 5kg이 빠져서 168cm에 47kg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시영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40kg대에 진입한 것이라며 상당히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 제법 자세도 나오고 스파링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정도면 촬영에 들어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갑자기 방송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사이 터진 권투선수 사망사고가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판정패 당한 배기석 선수가, 경기 후 샤워중 뇌진탕 증세를 보이며 병원으로 옮겨진지 3일만에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무더위를 이기며 기를 쓰고 복싱을 배워놨더니 촬영을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된게 못내 아쉬워 복싱대회 출전을 자청했다고 한다.
 
처음엔 생활체육대회에 나갔다가 아줌마 선수에게 걸려 판정으로 지고 말았다고 했다. 이시영 당시 실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대회에 다시 도전해서 기어이 1승을 거뒀다고 웃음지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이시영은 해를 넘겨 2011년 3월에 안동에서 열린 전국 아마추어 신인대회 토너먼트에 다시 출전했다. 그리고 결승전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시영은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시영은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연예계와 복싱계의 별이 되다
복싱 드라마는 무산되었지만, 이시영의 이 용감한 도전은 실로 많은 변화와 성취를 가져왔다. 안티팬과 불안한 미래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던 여배우 이시영은 그간의 설움을 한풀이라도 하듯 샌드백을 두들기며 땀을 흘렸다. 그 땀들이 이제 못다핀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자양분이 된 것이다.
 
이제 수많은 안티들은 이시영의 열렬한 팬으로 거듭났고, 청순미와 건강미를 동시에 갖춘 이미지로 거듭난 그녀는 멜로 드라마는 물론 액션연기까지 거뜬히 소화해내는 전천후 연기자로 인정받아 TV드라마와 충무로의 블루칩이 되었다.
 
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더 빛나는 별이 있다. 복싱을 통해 새로운 매력을 더한 배우 이시영, 그녀가 날이 갈수록 더 눈부신 광채를 내길 기대한다. 이시영은 아직도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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