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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지방의 겨울은 그다지 혹독하지 않다. 그래도 옷은 겨울옷을 입어야하고 우리에게 세모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서로서로 한해를 잘 마무리하시라는 덕담이 오고가는 아름다운 시즌이다. 아무리 세태가 좋지않다 하더라도 이때만큼은 신문에서 약간의 훈훈한 기사라도 읽을 수 있는 때이니,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이다. 지난날에 비해서 기부문화도 많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 같고, 많은 이의 생각에 봉사라는 개념이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따뜻하다. 신문은 가능한 한 안 읽는 것이 건강에 좋을 만큼 열 받을(?) 기사거리로 가득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에 우리의 미래를 열어 볼 용기를 살짝씩 얹어서 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한 10년 전 쯤에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한 선배님이 무언가 가치 있는 책을 한권 소개해 달라고 하길래  이 책을 빌려 드렸더니 또 다른 이에게 빌려주고, 빌려주고 하다가 결국 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점에서도, 출판사에서도 그 책을 다시 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 크면 그 책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아주 아쉬웠었다. 그리고 2002년, 똑같은 사건을 다룬, 다른 한국어 번역판이 '인듀어런스'라는 제목으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내가 그 책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영웅 때문이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관심은 남극점과 북극점에 온통 쏠려있었다. 누가 먼저 그곳을 정복 하느냐? 가 관건이었다. 스콧경과 아문젠이 선두를 다투고 있었고, 섀클턴 역시 두 번의 도전에 이미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위협이 코앞에 다달아 있을 때였다. 1914년 8월, 낙천적인 성격의 섀클턴 선장은, 27명의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목적지인 남극점을 향해 출발을 했지만 목적지를 150Km를 남겨두고 부빙군에 갇혀 조난을 당하게 된다.  땅 한 뙤기 없는 남극 얼음위에서, 기온은 영하 34도~70도를 오르내리고, 시속 300Km의 바람과의 2년여 사투 끝에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1916년 10월 8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생환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여정들을 적은 일기에 의지하면서, 생생한 사진 원판과 함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얼마나 고마운지 일깨워준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대목이 한 군데 있었다. 바로 제비뽑기 사건이다. 부빙위에서 삐걱거리는 얼음소리를 들으며, 찢어진 텐트 사이로 하늘에 뜬 달이 보이고, 방수되지 않은 그라운드시트에 누워 있는 상황이라면 슬리핑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육지가  600Km정도 떨어져 있다면 그 극한 상황이란 가죽 백은 18개, 대원은 모두 28명. 누구든 10명은 질이 훨씬 떨어지는 재규어 울 백을 덮고 밤을 견뎌야 한다.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선장과 부대장, 그 외 고급 대원들 모두가 울 백을 뽑았다. 품질이 좋고 따뜻한 가죽 백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 되었다. 거기엔 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일반 대원들은 즉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처럼 극한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이끌 수 있었던 섀클턴의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 절대 절명의 순간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또, 이 땅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과연, 나 역시 조작을 해서라도 일반 대원들에게 가죽 백이 돌아가도록 그들을 존중해 주고, 귀하게 대접해 주었을까? 죽음을 무릅쓰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으리라. Fortitudine  Vincimus(인내로 극복한다)라는 가훈으로 무장되었던 섀클턴 경. 대원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공존하는 약점과 장점 사이에서 대원들 자신들도 모르는 힘과 인내를 이끌어 냈던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정말 부러웠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다시 한 번 그와 그의 남다른, 조작된(?) 제비뽑기를 생각하며, 우리도 이런 제비뽑기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마음,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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