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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보존논란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발견 이후 20여년을 방치하고 국보지정 이후에도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던 문화재청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몫을 제대로 찾겠다고 한다. 국보 관리의 주체인 문화재청이 그 역할과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첫 행보가 대규모 기자단을 이끌고 반구대암각화 현장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한국의 집 취선관에서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정책포럼을 출범시켰다. 문화재청의 이같은 일련의 행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감성적 접근'이다.

 문화재청은 변영섭 문화재청장 취임 직후 '문화재가 물속에 잠깁니다'라는 제목의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팜플릿을 제작했다. 12쪽짜리의 이 책자는 서울의 전문 광고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반구대암각화의 현황과 훼손 정도, 보존에 따른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입장차, 문화재청의 보존대책을 밝혀 놓았다. 그동안의 진행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이 책자만 보면 울산시는 식수를 담보로 생떼를 쓰는 무지와 독선의 전형으로 보이게 구성돼 있다. 울산시의 '생떼행정'을 보다 과학적 근거로 덮어씌우는 부분은 울산대 공공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울산시민은 반구대암각화를 소중히 생각하고 보존하고자 합니다'라는 타이틀로 소개한 설문조사는 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시민 여론이 86%라는 사실과 대체수원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시민들이 14%라는 사실을 두드러진 활자로 돋보이게 구성하고 있다. 몇 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어떤 설문 내용을 근거로 조사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86대 14라는 자극적인 활자만 드러나게 만든 광고사의 편집이 문화재청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울산대 공공정책연구소가 울산시민은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5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했다. 120만 시민 가운데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과연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가도 의문이지만 설문조사의 기본인 질문 항목의 공개조차 하지 않고 대상과 표본수, 오차범위를 빠뜨린 설문을 공식 팜플릿에 게재한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적어도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는 문제라면 그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전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설문이 진행되었을 때 그 자료는 유용한 가치를 가진다. 그런 전제를 배제한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치를 홍보 책자에 편집하는 것은 현실을 오도하고 울산시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기망행위다. 과연 정부기관이 정치권에서나 할 법한 여론조작을 민감한 문제에 차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설문을 통한 울산시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이 책자는 당장 폐기처분하는 것이 맞다. 잘못된 자료를 홍보용 책자로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 보존 해법을 여론몰이로 쟁취하겠다는 저의를 의심받게 된다. 반구대암각화를 물문제와 분리해서 해결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 역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마당에 여론조작까지 계속한다면 울산시민들의 반발심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반구대암각화의 보존 해법은 물문제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화재청은 홍보책자 말미에 댐 건설을 포기하고 암각화를 지켜낸 포즈코아와 교량건설을 강행해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독일의 엘베계곡의 예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두가지 예는 모두 반구대암각화와 상황이 다른 예로 부적절한 근거라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포즈코아는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암각화가 발견됐기 때문에 수몰을 면할 수 있었다. 지난 1965년 사연댐을 건설할 때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됐다면 당시에 얼마든지 댐 위치 변경이나 기타 논의를 통해 반구대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도록 조치 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을 외면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엘베계곡은 계곡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었기에 이 곳에 교량이 들어선다는 것은 지정된 문화유산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다. 당연히 이를 위반했으니 지정이 해제되는 것이지 반구대암각화처럼 암각화 자체에 위해를 가하는 형상변경이 아닌 것을 마치 같은 맥락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전제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008년 7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32차 세계유산위원회 연례회의에서 세계 27개 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추가 지정됐다. 당시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은 유적유물도 있지만 자연과 인공이 결합한 문화유산도 눈에 띄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알프스 철도인 스위스 알불라-베르니나 RhB 구간이다. 이 곳은 스위스 동남부 그라우뷘덴 주에서 출발해 알프스 고산준령을 종단해 이탈리아 티라노에 닿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 구간으로 꼽히는 곳이다. 각 역의 표고 차가 매우 큰 구간으로 수많은 터널과 다리를 지난다. 세계문화유산은 가치 있는 유적과 유물이기도 하지만 이를 지켜내는 인간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의 항구적 보존을 위해 소유국가나 지역주민들의 노력이 유네스코가 중요시하는 기준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보존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원형보존' 이야기만 한다. 자연상태의 훼손은 어떤 것도 안된다는 논리다. 본질이 반구대암각화인지 반구대로 밥먹고 사는 관련인사들인지 모를 노릇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감성호소에 열을 올리지 말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보존 대책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순서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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