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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아파트 천국이다. 그것도 초고층 철근콘크리트 벽식구조아파트 천국이다. 아파트 잘 굴려서 돈 많이 번 국민도 많고, 아파트 지어 팔아 부자 된 아파트사업자와 부동산사업자도 많다. 수십년에 걸친 아파트 불패신화와 성공신화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아파트 천국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폭등하는 아파트 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고, 사회 양극화에 우는 국민도 많다.
 많은 경제학자와 아파트 공급업체, 그리고 더 많은 부동산 관련종사자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한다. 분양가를 끌어내리기 위한 세제와 금융정책이라는 정부의 약발은 먹히지 않고 있다. 일부 매스컴은 정부의 규제가 '시장경제'에 반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자 한다. 하나는 아파트 정책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아파트라는 건축물의 성격과 수명문제이다. 먼저, 공급방식이 현재와 같은 선분양중심이고, 전국 아파트가 거의 같은 구조와 층수, 그리고 용적률에 의해 지어진다면 공급 양 확대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어떤 수준의 아파트가 필요한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업체의 수요조사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파트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공급자가 선분양제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고, 그 위에 고가전략과 아파트 브랜드화라는 신무기까지 갖추고 있는 이상 백약이 무효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넓은 아파트, 보다 질 좋은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여 불필요할지도 모를 아파트를 계속 지어댈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을 둘러싼 경쟁이 심해지고, 토지가격이 오를수록 자본과 기술에 브랜드까지 갖춘 대형 아파트 사업자는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아파트 가격은 더욱 올라갈 것이며, 반면에 아무리 많은 아파트가 지어져도 서민의 내 집 마련은 한층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두 번째는 아파트의 수명과 건축적 특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난 80년대 이후 한꺼번에 지어진 우리 아파트는 그 수명도 한꺼번에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수명이 다해도 고층아파트는 재건축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변화와 초고층 철근콘크리트 벽식구조라는 건축형식은 현재는 각광받는 아파트단지들이 장래에는 슬럼이 되고 버려지는 단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즉,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초고층 아파트는 철거가 어려운데다가 폐기물 처리비용까지 합치면 철거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 벽식구조아파트는 용도와 구조 변경이 어렵다. 용적률도 꾸준히 낮아져 왔으니 현재의 아파트를 부수어서 더 큰 면적을 얻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사기간의 임시 주거비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동의 아파트에만 70-100세대 이상이 거주하니 많은 비용이 필요한 재건축을 위한 주민합의도 쉽지가 않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 현재의 초고층 아파트가 가진 가치는 무한히 감소해 갈 뿐 아니라 자칫 초대형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반면에 후분양제도가 도입되면, 우선 대규모 단지 중심의 묻지마 개발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브랜드의 힘을 등에 업고 이미지만 가지고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어진 평범한 집을 가지고 입주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차 치밀한 수요예측과 품질 차별화가 수반될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원리가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 공급지역과 공급규모의 분산이 나타나고, 보다 다양한 아파트가 생겨날 것이다. 그 결과 중소 주택메이커와 지방 건설업체 및 건축설계업체도 사업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건설시장도 활성화 될 것이다. 과잉투자와 난개발, 그리고 고가아파트를 막는 길은 후분양제 도입에 달렸다. 이미 금융면에서는 중도금무이자대출 형식으로 사실상 후분양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선분양제도를 고집한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국토를 훼손하고,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일을 부추키는 것이다. 집은 완성해서 팔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규모의 경제가 아닌 기술과 정성이 평가되고, 나아가 우리 주거문화의 다양성이 살아나고 건축문화가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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