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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더웠다, 여름이니 당연히 더워야 했겠지만 지독히도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전국이 가장 긴 장마로 물폭탄에 몸살 앓는다고 보도했지만, 울산은 끝끝내 마른하늘로 장마를 마감했다. 분지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전국 최고의 기온을 자랑하던 대구를 몇 번이고 이겨먹었으니 명실공히 여름 최고기온은 이제 울산이 거머쥐게 생겼다.

 더위 속에 전력난까지 겹쳐 참으로 힘겹기 짝이 없었다. 에어컨을 틀자니 에너지 절약 동참을 호소하니 외면할 수도 없고, 너무 힘겨워 에라, 눈 질끈 감고 한 번 틀다보면 몸은 반가워해도 마음은 불편하니 하필 블랙아웃 사태라도 일어나면 그 부담은 또 어쩌나 싶어 꺼버리곤 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동물은 적응력 하나는 기막히게 뛰어난 모양이다.

 여름 초입 첫 더위가 왔을 때는 30도만 넘어가도 긴장하던 몸이 34도, 35도의 기온에도 꿈쩍 않했다. 아침 일기예보에서 오늘은 35도의 폭염이라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38도 더위를 몇 날이고 이겨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긴 공단 쪽은 40도가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속에서 일하시는 분들 생각하면 숨이 더 턱턱 막히기도 했지만 이 더위에 집 안에서 선풍기 하나로 버티기도 예삿일이 아니다.

 아침부터 선풍기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오전 11시가 넘어서면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뜨거운 기운이 실린다. 예사 때 같으면 해륙풍 바뀔 시간인데 바람은 꿈쩍도 않는다. 가구와 바닥은 이미 체온에 뜨겁게 반응을 한다. 앉아 있는 것보다 서서 움직이는 편이 좀 낫다. 땀을 줄줄 쏟아내는 이마에 질끈 타월 하나를 묶어 올려야 눈으로 들어가는 땀을 피할 수 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극기였다. 불을 다루는 부엌은 38도에 5도를 더하면 제 온도가 된다고 한다. 요즘 속담에 '복 중엔 입술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데 주부들은 그래도 식구들을 위해서 밥을 지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시원하고 보다 영양분 있고 맛난 식사를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입술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 이 더위에 날마다 식사 준비를 하려면 짜증날 때가 많다. 35도만 넘어서도 지도를 온통 붉은 빛으로 보도하는 뉴스에서도 40도가 넘는 부엌에서 수고하는 주부의 노고를 알리는 곳은 없다. 이 대접받지 못하는 노고를 당연한 듯 보는 시선 때문에 세상 주부들은 더 서운하고 서럽다.

 그뿐인가, 하루하루 벗어내는 옷은 금방 태산이 된다. 핵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날마다 벗어내는 속옷·겉옷에 정신없는데 이 염천에 다림질까지 하다보면 온몸에 땀범벅이 된다. 빨래는 한나절이면 마르니 좋긴 하지만 세탁기 안은 좀 더운가, 꺼내고 널고 걷고 개키고 다림질 하고….

    이런 노동 속에 있다 보면 저절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중얼중얼. 어지간히 알렉산더 대왕도 힘들었나보다 부연까지 하면서 또 중얼중얼. 올해 입추는 가을 소리는 입도 뻥끗도 못하고 지나갔고, 말복 역시 시원한 소나기 세례 한 번 없이 염천으로 장식을 했으니, 이제 남은 노염을 어떻게 견디나 싶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더위를 좀 잊어보자고 전화기를 붙들고 숙모님께 하소연 했더니, 그런 소리 말라고.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무슨 호강에 받친 소리 하느냐고 당신 이야기를 쏟아놓으신다.

    옛날이라야 불과 몇 십 년 전, 빨래는 모시에 삼베에 무명에 전부 두드려 삶아야 하고, 풀을 끓여 주물러 말리고 적당히 마르면 밟아서 다듬이에 올려 올 치지 않게 다듬이질하고 올이 서면 그때서야 숯불을 일구어 다림질 하고나면 밤중이었노라고. 목욕탕이 있어 등목이라도 시원스레 할 수가 있나.

    복중에 어른 찾아뵙는 예의 때문에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손님이 되기도 하고 손님을 받기도 해야 했다고. 사대봉제사로 특히 여름철 제사가 많았다고. 하긴 선풍기도 사치가 되던 시절 이야기니 다른 여건이야 오죽 열악했겠는가. 다시는 입도 뻥긋 못하고 고스란히 숙모님 이야기 듣다보면 요즘 이 시절은 참 좋은 세상이지 싶다.

    '그렇지, 이 좋은 세상 불만 없이 살아야지, 그럼.' 돌아앉은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또 짜증이 난다. 정말 올 여름은 이 좋은 세상에서 빼버리고 싶을 정도로 덥긴 참 더웠다. 처서 지난 후 서늘해진 바람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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