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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울산예총에 대한 보조금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내사(內査) 소식이 울산문화계를 강타했다. 그보다 앞서 처용문화제 정산과정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고보조금이 깎이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두고 대체로 자부담 제도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자부담 10%는 개인예술가나 단체보다 보조금 규모가 큰 협회단위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사태를 자부담의 구조적 모순으로만 한정할 경우, 어려운 조건에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묵묵히 창작열정을 불사르는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똑같은 의혹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필자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고자 한다.
 

 시대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문화예술계의 관행과 행정의 정책부재, 그로 인한 관리체계 문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달려들거나 가축 떼를 군대라고 오해 한 것은 풍차와 거인은 크기가 '비슷'하고, 양떼와 군대는 많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시기 '유사성'의 인식틀이 '동일성'과 '차이성'의 확연한 구분, 즉 '재현(representation)'으로 바뀐 고전주의 시기에 들어오면 돈키호테는 격리되어야 하는 광인(狂人)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환경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1972년 대한민국 최초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문화예술진흥법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되는 등 문화예술관련 법과 제도, 인력과 조직이 구축되었으나 아직까지는 문화예술은 경제성장의 부속물로 이해됐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지방자치제를 기점으로 예술회관, 미술관, 도서관 등 문화기반시설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른바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한 공급위주의 근대적 문화정책(문화민주화)이 시작한 것이다. 이때 문화정책의 최종구현자가 예술인들이었고, 관에서 예술가를 지원하면 일반 시민들이 예술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들이 예술단체에게 예산과 사업을 몰아주어 육성한 것이 오늘날 지역문화예술계이다.
 

 그런데 시대는 문화정책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key word)는 융·복합이다. 디지털 기술의 급진전과 정보처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식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지고, 지식의 수명이 짧아진 만큼 한 가지 분야의 지식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지식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지식(meaning)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융·복합시대에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지금까지 천재(天才, genius)에 의존하던 창의성은 일반시민들의 창의성으로, 또 일방적 소비자였던 시민이 직접 생산의 영역까지 참여하는 프로슈머(생비자 生費者, pro-sumer), 나아가 자기 삶을 직접 연출한다는 큐레이슈머(Cura-sumer)까지 등장시켰다. 이제 대중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경제와 생활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과거 예술가 중심, 공급중심의 근대적 문화정책에서 시민이 단순한 예술 감상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예술생비자가 된다. 그리고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서 시민성·사회성을 강화해가기 때문에, 세계의 선진 국가들은 이미 21세기 경쟁력으로 국가 창의성을 제시하고 그 한 방편으로 생활문화예술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이제 문화예술은 국가와 도시 창의성을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참여와 자발성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정책 대상을 일반 시민 전체로, 창작을 포함한 향유로 확대해야 하며, '모두의 예술(arts of all)'을 위한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하향식(top-down) 문화예술정책에서 상향식(bottom-up) 문화예술정책으로 전환을 요청한다. 이것이 탈근대 한국문화정책의 이념인 '문화민주주의'의 진면모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시민창의성의 육성은 관치(官治)가 아니라 민간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여기에 지역문화재단의 절대적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의 필요성은 순환보직의 공무원 특성상, 그리고 경직된 조직문화의 특성상 민간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했지만, 그 보다 66차 유엔총회에서 천명된 것처럼, 지속가능한 도시발전, 즉 창의성과 시민성, 민주주의와 문화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더 필요하다.
 

 당대의 가치와 믿음의 체계로서 인식의 틀은 모든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 강도 또한 견고하기 때문에 감히 바꾸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당대의 인식틀에 대한 도전은 곧 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낡은 틀과 관계는 오래 지속된다. 오늘날 울산문예계에서 낡은 관행이 사건·사고로 불거져 나오는 것은 그 변화의 징후다. 문제는 조금씩 징후가 나타날 때 처방을 내려야 한단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가(代價)를 크게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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