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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돌고 돈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어느새 다가와 곧바로 현재를 먹어 치우며 또다시 과거가 된다. 이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계속해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란 없다. 현재와 미래가 순식간에 맞물려 쳇바퀴 돌 듯 과거가 되는 이 반복성이 연속선상에 있는한 어쩌면 영원한 현재도 미래도 없는 것 아닐까?

 이렇듯 매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간 그 순간들은 흔적을 남긴다. 때론 기록으로 혹은 기억 속 기쁨과 슬픔의 상흔들을 남기며 현재의 시간들도 이어가고 있는 삶이 우리네 인간사다. 이 과거사 속 기록들의 흔적을 전국연극제 마지막 경연작품, 대전지역 대표로 참여한 떼아뜨르 고도 극단이 무대 위에 고스란히 투영해 열연했다.

 연극 '기록의 흔적'(최준호 작·권영국 연출)은 조선시대 불행히 죽어간 폐비 윤씨와 그의 아들 연산군(신현지 분)과 춘추관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박승원(권영국 분)과의 대립 구조 속에서 극이 펼쳐진다. 대비마마의 음모로 불행하게 죽어간 폐비 윤씨의 억울함을 어린 연산군은 춘추관 박승원을 찾아 모친에 대한 비루한 기록들을 삭제해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박승원은 연산군의 간청을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장성한 연산군은 박승원을 찾아 또다시 모친의 기록들을 삭제해달라고 하지만 이 역시 거절하자 연산군은 박승원의 무참한 처형을 명한다. 박승원은 연산군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아픈 과거도 상처를 딛고 일어 선다면 아름다운 기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과거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며 결국 저자거리에 사지가 찢겨 처형 당하고 만다. 그는 연산군이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함께 나눴던 약속을 기억하며 죽어간다. 그 약속은 다름아닌 진실은 끝내 왜곡치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진실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다해도 그 진실은 결코 변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진실은 진리이다. 수 없이 많은 역사의 기록들이 우리 인간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지만 그 역사들은 또 얼마나 진화를 거듭해 왔던가?

 새로운 왕조의 강압과 간신배들에 의해 역사는 거듭 날조돼 온 바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극중 사관인 박승원의 대사처럼 기록을 수정한다해도 진실은 남는 것이다. 그래서 사관은 가슴으로 기록의 진실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록을 빙자해 사람을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반복되곤 했다. 그러나 현재의 진실한 기록은 다음 세대의 지침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됨을 믿는 박승원의 의연함이 감동으로 전해져 왔다. 그래서 어떤 권력이나 죽음 앞에서도 사관으로서의 절개를 지켰던 박승원의 용기가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 연극'기록의 흔적'이었다.

 역사란 지금도 쉼없이 돌고 돈다. 마치 이를 상징하듯 이 연극은 무대 중앙에 크고 둥근 원형을 그려 놓았다. 그 원형을 따라 등장, 퇴장 때마다 원을 따라 몇 바퀴를 돈 후 원 안으로 들어가 극대사를 하는 배우들의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대 상수에 한복을 입은 춤꾼을 세워 장면마다의 상징성을 더한 오브제 장치도 인상 깊었다. 또한 7명뿐인 등장 배우들을 다역으로 변신, 출연하게 한 연출 구성과 작가의 성격 구축이 완성도를 드높였다.

 연극에 있어서 잘 짜여진 구성이란 잘 차려진 밥상과도 같다. 요목 조목 다채롭게 부족함없이 식도락가들을 잘 배려해 조리한 음식들을 먹는 이들은 식후 감동과 그 짜임새있는 밥상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축제도 이와 같다. 지난 주말 20일 동안 펼쳐진 전국연극제가 무사히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다채로운 부대 공연들과 학술 세미나와 연극인들의 화합의 장인 전국연극인들의 밤과 연극제 폐막식까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관객과 배우, 15개 각시도를 대표해 출전한 팀들을위해 삼박자를 맞추며 정성껏 밥상을 준비한 울산광역시와 연극협회에 격려와 고마움을 전한다. 더 나아가 이번 성공적인 개최를 발판으로 지난 1997년 광역시 승격 이후 20여 년이 다 되도록 아직 울산광역시립극단이 창단되지 않고 있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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