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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길부 의원이 이번 18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키워드가 '울주의 아들,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울주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한나라당 공천탈락에 반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을 상대후보가 '철새'라 공격한 것에 대한 방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또 '농사꾼의 아들'은 장사꾼처럼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소처럼 우직하게 일을 하겠다는 정치소신이다. 강 의원을 대하다보면 '농사꾼'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만큼 기교가 없다. 관료생활의 정점이라 할 차관 벼슬까지 한 사람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건설교통행정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더 없이 어눌했다. 특히 정치가 그랬다. 그에게 정치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지역 현안문제가 나오면 밤을 새워가며 일에 몰두하지만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늘 한 발짝 뒤쳐졌다. 조금만 약삭빠르게 처신하면 참모들이 힘들이지 않고 넘어갈 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처세술의 약점에도 불구,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성취한 강 의원이다. 그의 친구들은 "강 의원은 행운의 사나이다. 객관적인 현실만을 놓고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결국에는 해내고 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고작 6년 남짓한 정치이력에 당적은 수 없이 바뀌었다.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 약삭빠르지 못한 행동의 결과라 하더라도 심했다. 한나라당만을 두고 그는 두 번 입당했고, 두 번 탈당했다. 이번에 그의 한나라당 입당이 성사되면 한나라당 입당만 세 번을 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강 의원은 지난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 시장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박맹우 시장에게 석패한 그는 경선에서 떨어진 4월 이후에도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2003년 경기대 겸임교수로 가면서 당적을 버렸다.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려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그에게 17대 총선이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그의 전문성과 지역인지도를 인정, 열린우리당 후보로 울주군에 출마하도록 했다. 이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울산은 한나라당 일색이라 누구도 그의 총선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지만 당선됐다. 17대 대선을 앞두고는 또 다시 한나라당에 투항, 백의종군했고 한나라당 당적을 재차 얻었으나 18대 총선 직전에 출마를 위한 당적포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질기고 모진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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