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는 봄이 아쉬워 봄을 전송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자 딱히 갈 곳이 없어 주택들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가 우연히 연탄재를 보았다.
 까만색이 흰색으로 바뀐 연탄재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담벼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본 연탄재는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 했다.

 지금은 연탄이 사양산업이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모든 가정에서는 연탄이 필요했다.
 그때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준비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족들이 먹을 쌀, 김장김치, 따뜻한 아랫목을 책임지는 연탄, 이 세 가지를 준비해야만 비로소 겨울을 지낼 준비가 다 된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월동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연탄이었다.
 연탄이 있으면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 있지만 없으면 차가운 방에 이불만 덥고 가족들의 온기로 추운 밤을 보내야 했다. 
 그 고마운 연탄으로 인해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70년대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아침저녁으로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늘 들어야 했다.
 "울산에 살면 자전거와 연탄가스만 조심하면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옆자리의 친구가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며칠 뒤 연탄가스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연탄가스 사고는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하는 학생들이 변을 많이 당했다.

 그래서 자취방을 찾아오는 부모님은 쌀과 밑반찬을 가지고 오는데 그 속에는 꼭 물김치가 있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특별한 약이 없어 재빨리 물김치를 먹어야 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그런 연탄은 추위를 이길 수 있게도 했고, 저승사자가 되기도 했다.
 까만 연탄이 연탄재로 바뀌면 그 나름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는데, 눈이 와서 미끄러운 길이나, 물이 있는 곳에는 연탄재가 투하된다.
 그래서 모든 집 앞에는 연탄재로 길이 포장되었다. 그런 풍경이 불과 3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연탄이 지금도 달동네 사는 이들에게는 겨울이면 꼭 필요한 물품인 것이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 오면 자원봉사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연탄을 배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무거운 연탄을 즐겁게 배달하는 모습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이 연탄재를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썼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또 다른 곳에 사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심코 발길질을 하는 이들에게 경각심(警覺心)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번 뿐인 삶을 진지하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준다.
 다 타버린 연탄재도 소중한데, 우리의 삶은 얼마나 소중할까.
 예전에는 자전거와 연탄가스가 위험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위험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천재(天災)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인간이길 거부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인재(人災)이다.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아야 하듯이 타인의 인격도 존중해 주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의무가 있다.        
 그날, 골목길에서 만난 연탄재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