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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처
[에세이를 읽는 금요일]윤경화 수필가
2016년 12월 22일 (목) 17:02:56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산등이 어둑한 외양간에 엎드린 소등처럼 보이는 초저녁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주술품인 드림캐처가 춤을 추며 현관에 들어섰다. 거미집 모양의 성긴 그물에 구슬 장식과 새의 깃털을 층이 지게 묶어 모빌처럼 장식하고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인디언 특유의 몸짓이 느껴지고 그들의 생활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고종시누이 부부가 스무닷새 동안 알래스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들고 온 선물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기후와 자연, 지리적 환경과 전통, 심지어 의식까지 총망라한 문화의 덩어리가 나에게로 온 듯하다. 선물을 받으면서 이처럼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니. 당장 상상의 세계에라도 들어선 느낌이다.

오래전에 그들의 생활 수단은 고기잡이와 수렵이었다. 열악한 자연환경에 노출된 일상은 기원할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신물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시누이는 그런 신물을 나에게 건네주면서 악몽은 잡아주고 좋은 꿈을 꾸게 하는 물건이라며 침실에 걸어두라고 한다. 꿈을 잘 꾸지 않는 사람이라 드림캐처가 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마침 달빛이 들기 시작하는 동창에 걸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뜻밖에도 일 년 중 한두 번 꿀까 말까 한 꿈을 꾸었다. 워낙 산만한 꿈이라 퍼즐을 맞추듯, 문맥을 따라 문장을 정리하듯 눈을 반쯤 감고 누운 채 꿈의 조각을 끌어 모아 재구성을 해보았다. 어쩐지 나쁜 일까지 그물을 뚫고 들어온 것만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출근길에 '이산가족'이 되었던 꿈의 해석에 빠졌다. '그 신물이 불량품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들어왔지?' 혼자 구시렁거리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기 만한 것이 아니라 반전도 있다. 꿈속에서 잠시 친정어머니를 잃어버려 놀라기는 했지만, 아들과 남편, 안면이 있는 어느 여인까지 등장했다. 요즘처럼 시간의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얼굴을 봤다는 것은 분명 그 신물의 긍정적인 덕이 아닌가.

출근하자마자 옆 상가의 새댁이 펄펄한 생선 한 바가지를 들고 왔다. 바닷가에 사는 지인이 이른 아침에 건진 고기라는데, 상큼한 바다향이 물씬 풍겨 어수선하던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알래스카에서 온 드림캐처와의 인사 나누기는 꿈과 꿈의 해석, 바다의 향기로까지 이어졌다. 헛꿈 같지만 신기해 혼자 피식 웃었다.  나는 신물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상징성에 대해선 존중한다.

누대에 걸친 인간의 간절한 염원이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별 층을 이룬 생활양식에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전통, 관습, 역사, 문화의 흔적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들여다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신물의 특징은 인간의 자만심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드림캐처가 움직일 때마다 마치 부정한 힘과 밀당을 하며 나를 응원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느새 나 아닌 타자의 능력을 존중하는 낮은 자세가 되어 있다. 나에게 간절한 무엇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런 기원이 생긴 듯한 이 자세는 무엇인가. 단순하던 사람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드림캐처가 산골에 살고 있는 나에게까지 온 까닭이 있을 듯하다. 요즘처럼 지구촌은 물론 나라와 개인이 혼돈의 상태에서 제 길을 찾기 힘든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만큼 응원이 필요한 대상이 있을까 싶다.

불경기에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경주의 지진과 태풍 '차바'가 몰고 온 폭우는 서민들의 용기를 꺾고도 남을 만하다. 거기에다 억대 연봉자들은 파업을 하고, 중소업체들은 기다림에 지쳐 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던 청년들의 꿈은 단순히 밥그릇에 머물게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선실세가 음지에서 국정을 농단해왔다고 온통 나라가 들끓고 있다. 젊은이가 노인이 되도록 보아오던 것들, 믿어 왔던 것들이 낯설다. 진실한 것들이 있기나 한 건지. 이처럼 불안의 그늘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드리우고 있을 줄이야. 

우리 모두는 지나치게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다섯 손가락 정도의 수만 되어도 편이 생기고 끼리가 통하는 문화 속에 진실한 것들, 귀한 것들, 원칙은 미아가 된 지 오래다. 난관에 봉착한 현실을 받쳐줄 꿈마저 모래기둥처럼 불안해졌다. 이것만으로도 자만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드림캐처를 만나 인간의 겸손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어찌 뜬금없는 일이기만 하겠는가.

악몽을 막아줄 무엇이 우리 안에 있지만 불러낼 용기마저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서로 배려하는 일은 작은 것이라도 대단한 힘을 가진다.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오면서 드림캐처를 들고 온 것은 '떠나 있어도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노라. 당신은 소중한 존재야. 우리의 엄지야. 나의 미소야.'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내 가슴은 따뜻해진다.

어느새 한해가 이울고 있다. 평소에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을 정성스럽게 담아 전하는 일은 드림캐처를 선물하는 일과 다름없을 것이다. 각다분한 현실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는 더없이 소박한 새해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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