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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사 겸 국장

출사의 새벽, 장닭이 길게 울음을 토했다. 정유년 원단이다. 와대외박의 자격심사가 불을 밝힌 지난밤, 회자정리를 굵게 써내려간 강호의 잠룡들이 마지막 획을 긋다 멈췄다. 몇날을 직접 횃불로 밤을 도운 양산문공이나 이역만리 원탁에 앉아 불을 바라보던 기문보공은 달랐다. 마지막 획을 긋는 손 끝에 힘이 실렸다. 회자정리 강호출사. 이제 서막이다. 얼어붙은 동토의 아랫도리는 요란하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아작을 내고 동토를 뚫으리라. 비결을 점검하고 첩자와 가신을 다독거린다.

  4년간의 칩거 양산 문공,
  오방죽파 전서구의 붉은 통첩에
  한달음에 광화문으로…

  강호에 나서지 않은 숨은 책사들
'고리를 끊어야 나아갈 수 있다'는 제언
  중원연합 기문보공은 깊은 시름만

전서구(傳書鳩)가 붉은 통첩을 전한 아침, 양산문공은 한달음에 광화문으로 향했다. 얼마나 기다렸나. 임진년 동짓달 구파일방을 접고 낙향한 후 청계(원수를 갚는다는 전설의 푸른 닭) 10여두를 애지중지 기르며 양산에 칩거한지 4년이다. 통첩은 상경을 재촉했다. 삼철이 여전히 구파일방을 지키고 있었으니 전서구의 날개짓이 힘 찼다.

임진년 대회전 이후 방파의 세력은 비문계로 포장됐지만 삼철과 오방이 그려놓은 친문마방의 걸개는 종로를 떠나 서대문으로 향했다. 변수는 여전했지만 여의도 본방 금고에 넣어둔 금빛 휘호는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휘호를 지킨 건 삼철의 공이다. 해철공은 그 사이 안산에 방파를 구축해 갑오년 세월호 침몰사고를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다. 은둔한 정철공이나 호철공이 비선실세의 연좌제에 한발 비켜선 것도 오늘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대타로 나선 오방죽파는 성공적이었다. 신친문(新親文) 마방을 걸개로 걸고 여의도 근처에 별동대를 꾸린 이들은 삼철과 함께 양산문공의 와대행로에 돌을 놓을 포석이다. 재성겹공·진성달공·청래독공·민희좌공·김현불공 모두가 오방죽파의 책사다. 비록 원조 계파는 아니었지만 낙향한 문공의 구파일방 존재감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문공일파의 비책을 새롭게 고쳐쓰고 친노비결은 물론 좌빨향신 제조법까지 전수받아 문공의 또다른 간판으로 당권을 꿰찼다.

오방의 첫 거사는 대구추녀의 당권 장악이었다. 밀릴 것 같은 초반 계파 추임새를 문중 댓글부대로 극복하고 대구추녀를 단숨에 구파일방의 걸개로 걸었다. '신친문 오인방'의 등극이었다. 정유년 원단, 오인방은 전서구를 띄웠다. 붉은 통첩에 금색 필서로 양산문공을 깨우기 위해서다. 와대입성. 네글자였다.

중원연합방에서 임무를 마친 기문보공은 마음이 급해졌다. 아리수도 건너기 전에 출처없는 자객들이 작살첩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임무를 마칠즈음 열국의 나발통수들에게 던진 말 때문이다. "강호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중원에서 터득한 외공과 보수첩방에서 대대로 쌓은 비결을 모두 던져 일합을 겨루겠다"는 말은 파장이 컸다.

와대외박이 순실독침으로 낙마한뒤 팔방에 해독제를 구했지만 해독비결의 서책은 모두 외사감찰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고 마지막엔 보공의 울림통까지 불이 났지만 기문보공은 울림통조차 천옥격국의 신제품으로 바꿔버렸다. 고리를 끊어야 나아갈 수 있다. 백소회방과 반디공파의 급전이었다. 아직은 강호에 출사하지 않은 이들이 즐비하다. 원수활공 숙대사공, 오준출공 준우정공, 모두가 중원연합 10년 권좌의 책사들이다.

낭보도 있다. 중원에 마중 나온 진석강공이 친박졸파에 침을 뱉고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대구추녀나 와대외박과 출신이 다른 나경변려의 변신술은 천군만마다. 어디 이뿐인가. 아리수에 배를 띄우면 친박졸파에 비박골파까지 탑승권에 손을 뻗칠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첩보도 있다. 문제는 백소회방과 반디공파에 보수첩방의 사부제위들의 확고부동한 입장이었다. 40년지기 덕규장공이나 최근 반존사랑을 만들어 사랑채까지 지은 동성후공에 청명회기로 강호입성을 노리는 후원연합은 와대외박과 어떠한 인연도 기문보공의 출사에 도움이 안된다며 버티고 있다.

기문보공의 깊은 주름이 골짜기를 그린다. 세를 얻자니 파문당한 자들이 수두룩이고 순혈계파로 나가자니 강호의 권법에 적응기가 필요했다. 무림의 전설로 전해오는 금강부동신법(움직임 없이 적을 베는 최상위 검법)을 매개로 골격과 자세를 바꾸는 증보판을 보급하고 싶지만 강진손공이나 철수만공이 덥썩 물고 따라붙는 것도 부담스럽다. 멀리서 장닭이 훼를 치는 새벽도 이제 몇밤이면 끝이다. 보공은 '끙' 신음을 뱉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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