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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다
최옥연 수필가
2017년 02월 23일 (목) 19:12:12 울산신문 webmaster@ulsanpress.net
   

이른 아침 혼자서 카페에 들어섰다. 밖에는 다문다문 겨울비가 가볍게 내린다. 향긋한 커피향이 그만이다. 커피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좋다. 오늘도 손님은 나 혼자다. 처음 얼마 동안은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허나 이제는 출근 전에 가끔씩 내게 주는 하루의 선물이다. 달콤한 카페라테에 휘핑크림을 곁들이고 나면 커피향의 달콤함은 하루를 시작하는데 힘이 된다. 이제는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된 카페가 한때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몇 년 전에 조그마한 카페를 오픈한 적이 있다. 마음속에 언젠가 한 번은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딸을 위한 것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의 로망이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생각이란 것을 하고 나면 뒤에 생길 작은 문제들은 깊이 염두에 두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다. 지나치게 도전적이어서 결과적으로 잘 된 일들이 많았지만 나쁜 예들도 있었다. 카페 오픈은 나의 빠른 결단력이 무모하게 저지른 좋지 않은 결과물이다. 지금 생각해도 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일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달콤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커피와 같이 목을 타고 넘는다.

 시작은 그랬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콩을 가는 일이다. 콩이 갈아질 때의 고소하고 향긋함이 좋았다. 향기롭게 시작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처럼 비라도 오는 날은 대부분 한적하다. 손님이 없어도 비라도 오니 다행이라 위로를 하며 아침부터 애먼 커피만 계속 내렸다. 날씨 때문인지 커피향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으면 마음까지 무거워지곤 했다.

 손님들은 우르르 몰려왔다가 몰려가기도 한다. 어느 날은 카페에 오는 손님들이 단합이라도 한 듯 조용하다. 심지어 날마다 얼굴 보여주던 단골도 기척이 없다. 대뜸 전화해서는 뭐하냐고 반갑게 묻는 지인에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지나간다고 했더니 그가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그 웃음소리로 그를 짓눌리고 있던 일상의 무거운 스트레스도 같이 다 풀렸으면 좋겠다. 잠깐이지만 그와의 유쾌하고 짧은 교감 때문인지 나 스스로에게 꼬였던 심사도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도 모두 내 안에 있는 스스로의 문제인 것 같다. 

 커피를 내렸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커피 향은 그 어떤 방향제보다 머리를 맑게 하는 것 같아서 좋다. 커피를 마시기보다 향이 좋아서 커피콩을 갈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 향긋한 향에 반해버린 것이다. 메뉴판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만들어 한 모금씩 먹어본다. 평소에는 안 하던 행동이다. 만약에 딸아이가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았다면 십중팔구 왜 그러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 것이다. 하기야 딸의 취향과 내 취향이 서로 맞지 않으니 충분이 불편할 만도 하다. 나는 사람이 이유 없이 좋고 딸은 친구가 더 좋은 모양이다. 내가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삶이 더없이 좋다는 말도 친구들과 맛집 기행을 다니는 것이 더 좋은 딸에게 아직은 감이 오지 않을 듯하다. 장담컨대 친구들이 좋다는 딸은 아직은 내가 사람이 좋다는 의미를 모를 것이다. 그래서 딸의 마음도 백번 이해한다. 나도 짧은 치마를 입고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며 친구들과 밤이 하얘 질 때까지 놀고 싶은 피 끓는 젊은 청춘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게 커피는 그리움이다. 커피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만나고 차를 마시면서 음악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유를 갖고 싶었다. 그런 로망처럼 처음 얼마 동안은 출근하는 것도 좋았고 커피를 내리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내가 그려오던 생각의 조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커피 향만큼이나 사람이 더 좋았다. 밤이 어김없이 깊어가고 카페에 왔던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면 온전히 혼자가 된다. 밀려왔던 바닷물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바닷가에 홀로 서 있는 듯하다. 스산한 바람이 이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어딘가에 매인다는 것은 더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가슴 한 구석에 구멍 하나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란 어차피 누구나 혼자가 아니던가! 익숙해질 만도 한데도 아직은 잘 안 된다.

 생각해보면 유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년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였던 긴 시간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혼자서 밥을 먹었다. 추녀 끝의 밤은 항상 어머니보다 먼저 왔다. 무서움을 껴안고 잠들어야했던 그 차가운 기억들로 외로움이란 것도 어떤 실체가 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 어머니가 없는 시간으로 지쳐갈 때쯤이면 더러는 외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의 기억들이 내 몸에 깊이 각인되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외로운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물리적 차이를 가늠할 수 없다. 말하자면 나는 그냥 사람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집이나 학원이나 가게에 사람이 모여드는 게 좋다. 여러 사람이 모여 밥을 같이 나눠 먹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좋고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이 한없이 행복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 냄새가 좋은 것이다. 사람 냄새가 좋은 것은 어느 날 부산스러운 친구 집에 들렀을 때 그 집에서 나는 따듯함이었다. 사람 냄새가 따뜻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어쩌다 휴일에 집에 혼자라도 있는 날이면 낮이 지나고 밤중이 될 때까지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어둑 귀신처럼 소파에 앉아 깊은 밤까지 누군가 돌아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사람 속에서 살자고 시작한 카페를 근근이 일 여년을 끌다가 내려놓고 나니 마음을 누르고 있던 천근의 무게를 걷어내는 만큼 홀가분했다. 얽매여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왜 몰랐을까.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고 어느새 카페를 나설 시간이 되었다. 손님이 들어서서 다행이다. 텅 비워있던 카페가 마음이 쓰인 것은 왜일까, 자유롭지 못했던 까마득한 기억도 커피 향처럼 출렁거린다. 이곳이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나도 단골이 될 듯하다. 커피를 내리던 그때를 기억하며 자유로이 커피 향을 따라 나는 다시 올 것이다. 여전히 커피는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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