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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주향 동아대 석당학술원 전임연구원

동아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인 석당학술원은 1년에 3번 학술지 『석당논총』을 출간하고 있다. 전국, 전세계 어디서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논문을 투고할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많은 주제의 논문을 접할 수 있고 논문을 취합해 한권의 학술지로 만들어내는 전임연구원은 매우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논문을 투고하면 내 논문이 게재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심사결과 보고서를 받는다. 그러면 논문 수정기간이 일주일정도 주어지는데 이때 학술지를 내는 기관의 투고원칙에 따라 논문을 수정하고 학술지에 실리는 것이다. 게재된 논문은 연구 실적이 되고 경력이 된다. 참 간단한 시스템이다.
 이 간단해 보이는 시스템의 뒷배경에는 전혀 단순하지 않은 업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학술지를 한번 출간하고 나면 전임연구원이라는 이름에 스스로 의문이 든다. 나는 전임연구원이 아니라 전임행정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원고를 한번 모집하면 평균 15편에서 20편의 논문이 모이는데 논문 한건 당 3명의 심사위원을 선정해야 하니 여기서 벌써 전임연구원이 상대해야 할 사람들의 숫자가 45명에서 60명으로 증가한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바빠서 도저히 논문 심사할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라는 대답이라도 돌아온다면 밤새 이메일 띄우고 전화 돌려야 할 숫자가 약70명, 80명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겨우겨우 심사위원을 다 채우고 난 후에는 심사결과보고서를 받아 논문의 게재가능, 불가능 여부를 정리하여 투고자에게 통보한다. 게재 불가가 뜨기라도 한다면 예민한 분들의 날카로운 전화가 걸려온다. 전임연구원은 칼날 같은 항의를 알몸으로 다 받아내곤 녹초가 되어버린다. 한국연구재단의 논문 게재율을 맞추기 위해 질이 좋지 않은 논문은 가차 없이 떨어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쉴 틈도 잠시 수정 된 논문들의 오탈자 확인과 각주, 표, 그림 형식 등이 투고원칙에 맞게 되어 있는가 확인해야 한다.

 이 작업은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아야 하기 때문에 전임연구원은 그 순간 온 집중력을 발휘하여 전문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논문들을 속독하기 시작한다. 정신력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수정이 끝나면 이젠 출판사와의 씨름이다. 여러 출판사에 경매를 붙여 출판비가 제일 저렴하면서도 학술지를 잘 이해하는 전문적인 편집자가 있는 곳을 골라야 한다.
 편집자가 선택한 학술지의 표지 디자인에서부터 부여해준 ISSN까지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한권의 학술지가 완성된다. 출판비 지출까지 오로지 전임연구원의 몫이다. 학술원에서 1년간 가장 큰 예산이 지출되는 일이기에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
 출간된 논문이 발송되어 오면 한권 한권 포장해 우편발송하면서 전임연구원의 모든 역할이 끝이 난다. 꼭 한편의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학술지 편찬 기관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학술지 편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임연구원의 어깨가 무겁다.
 전임연구원에게 바라는 전문지식과 행정업무처리 수준은 한도 끝도 없지만 업무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있다. 본디 연구원이란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보통의 행정가 수준으로 그치는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논문을 살피는 전임연구원과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을 고용하여 업무를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전임연구원은 더욱 전문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멀리 내다보아 우리 인문학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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