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벡스코에서 2017 부산 아트페어가 있었다. 모처럼 많은 예술인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넘실거리는 공간을 기웃거리는 즐거움이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부스마다 생경한 미술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작품의 완성을 독자에게 맡기는 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느 부스에는 작품에 제목이나 작가 이름이 아예 없다. 오로지 작품만이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내 이미지요.' 하는 분위기다. 어느 작품은 두툼한 책만 펼쳐두었을 뿐 문자가 없다. 정적인 백지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분주하게 다가와 축제라도 벌어지고 있는 듯 동적인 느낌이다. 독자를 배려한 작품이다. 또 다른 부스 안에는 별도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드로잉 작품만 전시해 둔 곳도 있었는데 현대인이 겪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부스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한참 돌아다니다가는 다시 들어가 작품을 보면 다른 이미지로 다가와 새로운 해석이 가능했다.

 나는 완성품에 길들여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조금은 난해한 작품 앞에 서서 짧지 않는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나의 뇌리에 전개된 작품의 이미지에 이해와 오해가 얽혀 만들어낸 복잡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눈도장을 찍어 두는 것으로 모자라 입을 반쯤 벌린 채 어느새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다 보면 손에 넣고 싶어질 것 같은 충동에 머리를 흔들며 부스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 큰일 내겠다. 이 불경기에…. 정신 차려야지.' 하며 얼굴을 드는데 반색을 하는 얼굴이 있다. "경화야, 니가 여기 어쩐 일이고?" 중학교 동창이다. 남편과 함께 온 모양이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지만 어릴 때의 친구라 지난 세월의 공백 때문인지 나는 어색했다. 친구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뜬금없이 성장기의 내 행태들을 여과 없이 자신의 남편 앞에서 까발린다. 반백년도 더 지난 일을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민망하다.

 "이 친구는 공부만 했는데요, 쉬는 시간에도 책, 저녁에 저거 집에 가 봐도 책,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봤어요." 순간 그리스인 조르바가 두목을 욕보이는 짓궂은 장면이 생각나서 웃을 뻔했다. 조르바는 두목의 속을 읽었지만 친구는 지독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책벌레거나 학구파거나 거창한 목표가 있어 책을 씹어 먹을 듯이 공부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친구가 목격한 것은 주로 예습과 복습, 숙제하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소녀 가장에 가까운 형편이라 당시 내 신분이 학생이긴 해도 실질적인 신분은 우리집 일꾼이어서 공부를 자투리 시간에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보수에다 재주는 없지만 내 앞에 다가온 일은 다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다른 친구들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좀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또래들이 하는 경험은 하지 못한 것이 많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는데, 어른들 몰래 영화 구경을 가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빵집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는 일 같은 것이다. 이 일은 아직도 나의 로망이다.  

 친구는 나를 박학다식하지만 조금은 겸손하고 아직 촌티가 남아 있는, 그래서 한 번씩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 본 나의 겉모습을 모티브로 평생 노력해도 쉽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보통 아지매 자리에 오른 것을 그 친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친구가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조금 전에 내가 본 드로잉처럼 매번 다른 느낌에 놀라기도 하고 점차 익숙해지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더 자주 만나고 싶어 할 수도 있겠지만 아예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가 나를 긍정적으로 봤다는 것은 그 친구의 삶이 무탈하고 밝았다는 방증이다. 일흔을 앞둔 사람이 남편 앞에서 소녀처럼 떠들어댔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을 보니 신뢰와 깊은 사랑이 가득했기에 오해와 이해로 얽힌 나에 대한 그녀의 세계를 굳이 불쾌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는 현대미술의 열려 있는 특징을 개방성이라고 했다. 더 이상 일률적으로 고정된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나의 미술품에 감상자가 개입해 작품을 완성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끌어내는 동적인 현대미술의 특징을 함축한 말인 듯하다.

 최고의 예술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친구가 만들어낸 나란 사람의 이미지가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모처럼 만난 친구에게 그녀의 입장에서 최상급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에게 선물로 안긴 것 같다. 선물의 제목이나 의도 등이 모호하지만 나에 대한 오해와 이해가 혼재된 새로운 해석을 내포한 채로. 머지않아 움베르토 에코의 현대미술 이론인 개방성이 그녀가 나를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본래의 나를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