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하늘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산이며 들이며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내려와 작은 물줄기 큰 물줄기를 만들며 냇가로 흘러간다. 처음의 작은 냇가는 첨차 모여들어 큰 물줄기를 만들어 강을 이루어 흐를 것이며 종국에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어 갈 것이다. 창밖의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맛비는 세차게 땅으로 내려와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종국에는 가장 낮은 바다에 닿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맛비가 물이 되어 흐르고 흘러 종국에는 바다에 이르니 바다가 이들이 목표로 삼는 최종적인 목적지일까? 바다가 목적지라면 바다는 모든 물이 희망하는 중심지가 되는 것일까?

 

   과거 절대적 존재자가 인간사의 중심


 장맛비에 대한 상념을 우리의 역사로 옮겨본다. 우리의 삶은 비처럼 물처럼 흐르고 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혹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삶도 비처럼 물처럼 모종의 중심지인 바다와 같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인간사에는 이러한 궁극지로서의 중심지에 대한 관심은 고대로 부터 지대하였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오늘날 '해체론',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현상주의'니 하는 철학적 담론과 개념들로 나타난다. 중심의 완전한 해체기를 맞은 것이다.

 

   오늘날, 내가 사는 곳이 역사의 중심


 인간사에서의 중심지는 전통적으로는 늘 위대한 존재자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절대자로서의 신, 혹은 교황이나 황제, 왕, 귀족 등이 거처하는 곳이 되어왔다. 곧 이들에 의해 시공간이 비롯되는 것이기에 권력의 중심이자 관심의 궁극적 중심이 되는 곳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와 동양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기에 세계사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즉 서구의 고전적 개념으로는 제우스가 거처하는 천상이었고, 플라톤 이후에는 이데아가 존재하는 곳이었으며, 중세에는 하느님이 계신 곳이었다. 서구의 이러한 중심론은 신과 교황이 자리한 곳, 왕이 자리 한 곳, 그리고 귀족들이 자리한 곳으로 차츰 옮겨온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도 이와 같이 신격이 자리 한 곳, 천제와 황제가 있는 곳이었으며 왕과 귀족이 자리한 곳이었다.


 세계의 미술사는 이러한 정황을 매우 잘 보여준다. 우리가 가끔씩 보는 세계명화의 화면에는 늘 그들이 화폭의 중심에 묘사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화폭을 인간이 가진 정신계의 상징세계로 삼아 왔으며 그 중심에는 늘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온 것이 세계미술사의 한 면이기 때문이다. 화폭의 중심지에서 벗어날수록 권력적 위계를 가지며 차등화 되고 주변화 된다 하겠다. 세계미술사에서 그들의 자리를 일반 시민들이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대단히 큰 사건이자 의식의 변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대대적인 변화는 서구의 인상파가 그러했고 우리나라의 17, 18C 진경산수화와 민화가 그러했다.


 오늘날의 철학적 담론 중에 우리는 현상주의와 해체론을 주요한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드러난 문화적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한다. 중심해체를 위한 중심론이라 하겠다. 즉 세계의 중심은 내가 살고 내가 존재하는 '여기, 이곳'이며 내가 사는 '지금, 현재'의 시간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내용이다.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이기에 모두가 세계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인간 정신계의 상징이 되는 화폭의 중심에는 이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개념으로 본다면 주인공은 시민계층이 되는 것으로 위대한 화폭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존재이며 따라서 시민 개개인이 된다 하겠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가 사는 울산으로 옮겨본다. 울산의 중심은 어디인가? 전통적 개념으로 본다면 시장과 시청이 있는 곳이거나 혹은 정치, 경제적으로나 또는 사회적으로 명망을 가진 자가 있는 곳, 혹은 재화가 몰려있는 특정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울산시민 살고 있는 모든 곳이 곧 울산의 중심이 된다. 따라서 울산시민 개개인이 모두 세계의 중심이자 울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겠다. 울산의 중심은 곧 시민 각자가 있는 곳이며, 개개의 시민이 있는 곳이 울산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울산시민으로 주체적 참여의식 필요


 최근 울산에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와 국제행사가 빈번하다. 적지 않는 예산이 지출되고 적지 않는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행사가 시민의식이 모여진 결과이거나 그에 합당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울산시와 특정한 기획사 중심으로 모든 행사가 진행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행사와 시민간의 간극이 느껴지기 때문에 한편으로 울산시 중심의 행사로 여겨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울산시만을 탓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행사의 전후와 사후의 평가 등 모두가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와 의지가 더욱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계의 중심은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 울산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