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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를 인식하는 개인의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크게 희귀성, 진실성, 역사성, 예술성, 완전성으로 접근할 때, 울산에는 많은 문화재적인 요소가 산견된다. 울산에도 문화는 여러 가지 축제형태로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처러지는 연례행사로는 그 진정한 문화재의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타 지방에서 앞에 제시한 학문적인 이론들을 무시하고도 현재 많은 문화재(춤부문)를 지정하고 계승발전 활용하고 있음의 사례를 종종 신문기사와 언론방송을 통해 접 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정문화재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는 그 지역인의 교육과 생활수준 등의 지표와도 무관하지 않다. 문화재의 보유는 그 지방에서 거주하고 생활하는 지역민의 자존심을 대변해 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는 뜻이다. 우리 울산은 어떠한가? 반문해보고싶다. 울산학춤은 그동안 울산학춤에 관한 석사학위논문이 각 대학에서 무려 6편이 발표되었음에도 알 수 있듯이 많은 문헌의 증빙자료가 뒷받침 된 울산의 춤 문화이다. 그러나 울산의 이미지 홍보의 이용적인 측면에서나 문화 활용으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듯하다. 예를 들면, 처용무와 울산학춤의 역사성은 다 같이 신라시대까지 소급된다. 처용무는 처용설화의 발생지인 울산에서의 활동보다는 서울에서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국악계의 원로 김천흥선생은 일찍이 처용무는 처용의 발생지 울산에서 자리매김하여야한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 한편 울산학춤은 국악계 원로이시며 예술원 원로이신 성경린선생님이 제시한 '민간의 학춤은 울산의 융변산신에서 나왔다' 고 하는 글을 접한 김성수에 의해서 1997년에 최초 발표된 지 벌써 10년을 맞이한다.  글 쓰는 이는 다행히 울산학춤을 이수하였으며, 울산학춤의 보전, 전승, 발전시킬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음에 한편으로 두려우면서도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 울산학춤은 시민들의 춤이길 원한다.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울산시민에게 돌려주고자한다. 누구나 울산학춤을 출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전국 관공기관에서 하루의 시작을 국민체조로 시작했듯이 울산학춤을 각 학교와 문화단체, 관공서에서 생활화시키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이 춤을 추는 도시 울산으로 만들면 울산을 대표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더 이상 타도시의 문화를 많은 경비를 들여 빌려오지 않고도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피카소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의 작품세계를 동경하던 한 팬으로부터 스케치를 한 장 그려줄 것을 부탁 받고 그 자리에서 그려줬다. 그리고는 스케치의 완성을 보고 기뻐하는 팬에게 1만 달러의 그림 값을 요구했다고 한다. 5분 만에 완성된 스케치가 어떻게 1만 달러일 수 있냐는 팬의 반문에 피카소의 대답이 "이렇게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림 값만 매겨진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묻어나온 연륜의 재화 일 것이다. 울산학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울산학춤의 예능자 김성수선생님은 오십대 중반의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중후하고 자연스러운 춤사위와 학문적 이론을 정립한 울산학춤은 이제 울산보다 타지방에서 더 호응을 받고 있다. 일년의 공연 절반 이상을 타 지역에서 초청된 사실에서도 울산학춤의 발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더 이상은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 없는 선망과 모방에 쏠리지 말고, 울산학춤의 연구 자세를 읽어내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울산의 원로예술가 선생님을 따라 나섰다가 천금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때 즈음되면 자신이 고물처럼 살았는지 보물처럼 살았는지를 시시때때로 점검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할까?  젊음이라는 이름을 걸고 고물인지 보물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점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먼 훗날 모두가 보물의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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