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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노각수는 함길도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함길도는 예전부터 오랑캐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노각수는 자신의 주먹이 먼 옛적 북옥저 시대부터 내려온 권법이라고 했다.

 "옛적에 토문강 유역에 북옥저란 나라가 있었다오. 강 북쪽에 읍루족이라고 있었는데 툭하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았다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살았는데 나중에는 어린아이 때부터 주먹을 단련시켰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먹을 단련시키면 돌멩이 정도야 쉽게 깨뜨릴 수가 있는 법이지요. 어린아이들의 주먹을 모두 단련시키고 나니 어떻게 되었겠소. 아이들이 모두 장정이 되었을 때 읍루족이 다시 강을 건너왔는데 어떻게 되었겠소. 창검으로 무장하고 건너온 자들이 모두 대갈통이 부서져 죽고 말았답니다. 그 후로는 함부로 강을 건너오는 법이 없었답니다."

 "참 대견한 일이군요. 그렇다면 함길도 사람들은 모두가 돌주먹이란 말이네요?"

 "그렇진 않소. 태평성대에는 사람들의 긴장이 풀어져 무예를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지요. 고난을 당하면 사람은 강해지고 태평성대 뒤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해이해져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오." 

 노각수와 이선달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중에 무예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예전부터 태평성대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문에 치우쳐 무를 소홀하게 대하기 때문이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산 사람이 커다란 함지박에 삶은 고라니 뒷다리를 담아 내왔다.

 "자 이제 좀 먹읍시다. 사람은 먹어야 힘을 쓰는 것이오."

 노각수가 삶은 고라니 뒷다리를 뜯어 이선달에게 건네주었다. 이선달은 고기를 건네주는 노각수의 손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반질반질한 혹이 붙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단련했는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 동안이나 주먹을 단련시킨 겁니까?"

 "얼마 동안은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고부터 지금까지니까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구려."

 노각수는 주먹에 묻은 고깃국물을 스윽 핥아먹었다. 주먹이 고라니 기름으로 번들번들했다.

 "그 주먹으로 사람을 죽여 보았소?"

 "죽이다마다요. 함길도에서 여진족 놈들을 죽인 게 한둘이 아니오."

 "그럼 군사로 있었던 것이오."

 "그랬지요. 다 지난 일이지만."

 "그런 재주로 군에서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구려."

 "군사를 하든 뭘 하든 줄을 잘 서야 하는 것이오. 내가 모시던 장군이 부하들에게 살해되었소. 상관을 죽인 건 이행검이라는 놈이었소. 나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도망쳐올 수밖에 없게 된 거요."

 이선달은 기름 묻은 노각수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어쩌면 하늘이 노각수를 마구령으로 보낸 것 같았다.

 이선달은 마구령을 내려와 마구령 초입의 주막집으로 찾아 들어갔다. 장꾼들이 지나는 시간이 아니어서 마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윤미나 주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주모. 어디 갔소?"

 여전히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윤미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정지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빼꼼 열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았다.

 "동상 왔는가?"

 주모의 목소리였다.

 "그렇소. 내가 왔소. 사람이 왔으면 냉큼 내다보아야지 뭘 하는 게요?"

 이선달은 빼꼼히 열어 놓은 정지문을 확 열어젖혔다.

 "어이쿠. 동상."

 주모는 정지 바닥에 목물 통을 놓고 목간을 하는 중이었다. 이선달은 얼른 문을 닫는다는 게 문짝으로 자신의 광대뼈를 치고 말았다. 눈에 불이 번쩍 튀었다.  

 "어이쿠. 동상. 괜찮은가? 놀라지 말고 이리 들어오시게. 누난데 뭐 어떤가."

 이선달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주모가 다시 불렀다.

 "윤미가 있으면 등을 좀 밀어달라고 할 건데…. 동상이 잠깐 들어와 등 좀 밀어주시게."

 이선달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정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 맨몸을 다 보고 말았으니 등을 밀어준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손님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윤미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누님."

 이선달은 처음으로 주모를 누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기 힘들던 누님이라는 소리가 쉽게 나오는 게 신기했다. 알몸을 본 탓인 것 같았다. 이선달은 주모에게 다가가 잿물을 내려 만든 비누로 등을 문질렀다. 삼십 중반 여인의 몸은 튼실하게 살이 올라 농염 미를 뿜어냈다. 이선달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주모는 가벼운 신음을 내뱉었다. 김태환 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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