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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수필가
이지원 수필가·등대기행작가

제주공항에서 고산리 자구내 포구까지 닿기에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십여 분을 남기고 겨우 도착했다. 헐레벌떡 달려가 마지막 손님으로 배에 오르려는데, 인터넷으로 예매한 표를 매표소에 보여 주고 승선용 목걸이를 받아야 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사람 좋은 선장이 기다려 줄 테니 얼른 다녀오란다. 

새해 첫날을 보낸 다음 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침 7시 비행기를 탔는데 뜻밖에 운해 위 하늘 일출을 보게 되었다. 하늘에서 맞이하는 아침 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날씨 행운이 따라 줄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배를 타고 추자도까지 가야 했으므로 기상 상태에 따라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박이일의 여정이 순조로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차귀도(遮歸島)는 제주도에 속해 있는 섬으로 죽도와 와도 2개 섬을 합쳐 차귀도라 부른다.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서 약 2㎞ 떨어져 있으며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도까지는 유람선으로 십여 분 거리다. 차귀도는 주변 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가치가 높아서 2000년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되었다. 

제주 죽도등대. 이지원 수필가·등대기행작가 제공
제주 죽도등대. 작가 제공

차귀도는 배가 돌아가는 것을 차단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중국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하여 지맥과 수맥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매로 변하여 갑자기 폭풍을 일으켜 이 섬 근처에서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차귀도에 있는 죽도등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잠시 잠깐의 뱃길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섬들과 선상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어우러져 마음에 고운 물결이 일렁인다. 아름다운 자연을 눈에 담는다는 것! 그래, 바로 이것이 힐링인 거지.

섬에 내리면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릴까? 낯선 곳에 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마음이 설렌다. 날씨까지 좋아서 눈 닿는 데마다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배에서 내리기 전, 안내 사항을 듣고 하선한다.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며 늦을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니 시간 계산을 잘 해야겠다. 무인도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 무인도지만 이 섬에도 70년대 말까지 7가구가 보리, 콩, 참외, 수박 등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죽도에는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와 연자방아, 빗물 저장시설 등이 남아 있다.  

배에서 내려 곧장 등대를 향해 걷는다. 대숲을 지나고 갈대밭을 지나 옛 집터를 지나자 왼쪽 해안으로 절경이 펼쳐진다. 잠시 멈춰 푸른 바닷물에 세사世事에 오염된 눈을 헹구고 비경을 가슴에 품는다. 멀리 산등성이에 성냥갑처럼 보이던 등대가 점점 가까워진다. 다리쉼을 하며 차귀도의 풍광을 조망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바다로 시건을 던진 채 서 있는 죽도등대 앞이다. 새하얀 등대는 한림읍 비양리에 있는 비양도 등대와 많이 닮았다. 아니, 쌍둥이 등대 같기도 하다. 차귀도의 죽도등대는 한경면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 등대다. 195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자동적으로 어둠을 감지하고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위치한 '볼래기 동산'은 차귀도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직접 들고 언덕을 오르며, 제주 사투리로 숨을 '볼락볼락' 가쁘게 쉬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배낭 하나 메고 오르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은 높이지만 돌과 자재를 지고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볼락볼락'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만들었을 당시 고산리 주민들의 수고로움과 애환을 잠시 생각해본다. 등대 앞에서 예쁜 등대라고, 주변 풍광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진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이면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더 깊어지고 너그러워지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자연 앞에 설 때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외경심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연륜이 더해 갈수록 그 마음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계절 바뀔 때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수월봉을 바라보며 낙조도 보고, 갈대 우거진 섬길 걸어 다시 등대 앞에 서고 싶다. 

수 년 째 등대를 찾아다니고 있다. 혼자 다니기에 몹시 불편하지만 그때마다 감사하게도 따뜻하게 손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다. 이번 제주 등대 여행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아무리 야박하고 거칠어도 우리는 서로의 등대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이 통하여 오늘도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차귀도를 마음껏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이지원 수필가·등대기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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