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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옥타브 이상의 고음은 치유의 음이자 신비한 소리, 영혼의 소리다"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유사하다. 높은 주파수에 가냘프며 신비한 소리는 곧 고래의 소리이고 해녀의 숨비소리이다" 돌피리 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는 반응과 공명을 얘기했다.

2015년 5월 27일, 울산대 고래문화 세미나장에 반구대암각화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암전된 객석 맨 끝에서 핀 조명을 받으며 '돌피리'를 부는 남자가 무대로 걸어 나갔다. 시카고에서 온 김성규 선생이다. 객석에선 또 한 사람이 돌피리 이중주를 선보였다. 수백만년 전 화산재가 돌이 되고 속에 있던 작은 갑각류나 조개류의 사체가 탈각하면서 구멍을 내 만든 돌피리를 처음 선보인 순간이었다. 

반구대암각화의 인물상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인물상은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고 손과 허리에 악기나 활, 무기 따위를 휴대하고 있다. 손을 이마에 대고 멀리 망을 보는 남자는 허리춤 중간이 불룩하게 돌출되어 있다. 단검 같은 무기나 남근을 과장한 것이라고 해석해 왔다. 김 선생은 '돌피리를 허리에 찬 모습'이라고 했다. 호주나 뉴질랜드, 미국 시애틀 올림픽마운틴 해안의 마카 인디안들은 지금도 돌피리 연주로 고래를 불러 모은다며 반구대인들도 돌피리 소리로 고래를 불렀을 것이라 설명했다. 

포항 해변에서 발견한 돌피리. 김성규 소장
포항 해변에서 발견한 돌피리. 김성규 소장
일본 쇼핑몰에서 3,900엔에 판매된 돌피리. 김성규 소장
일본 쇼핑몰에서 3,900엔에 판매된 돌피리. 김성규 소장

2015년 2월, 김 선생과 함께 포항과 울주군 진하 바닷가에서 돌피리 탐사를 했다. 포항 해변은 돌피리 집산지였고 진하에선 두 개의 돌피리를 찾았다. 수집한 돌피리를 손질해 입술을 구멍에 대고 불었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순간 신비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어미 고래가 새끼를 부르는 소리인듯하고 새끼들이 친구와 물장난을 치며 사람을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원시악기인 돌피리에서 반구대인들의 고래 부르는 소리가 재현되는 것이라 착각했다. 

일본의 신사에선 지금도 신을 부르거나 신을 보낼 때 돌피리 연주를 한다. 공이나 계란형에 두서넛 구멍이 난 돌을 그들은 석적(石笛 또는 岩笛)이라 부르고 인터넷 판매도 활발하다. 전문 연주자도 있고 연주 교습 앱도 출시됐다. 교토나 와가산현 등 일부 신사의 제의 순서에 선인(仙人, 돌피리 연주자)의 연주가 들어있다. 우리가 돌피리를 잊고 있는 동안 일본은 이미 약 5,000년 전 죠몽시대 유적에서 발굴한 가장 오래된 돌피리를 보유하며 신과의 대화, 사람과 신을 연결하는 신성한 악기로 숭상해 온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Stone Flute, Stone Whistle이라는 피리가 있고 아즈테크인들은 흙으로 만든 clay whistle을 자랑한다. 모두 오카리나의 기원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돌피리는 김해에서 발굴한 5세기 가야시대의 것으로 현재 부산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에는 약 300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이다. 매우 사실적인 고래 사냥 그림은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의 작품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이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다수가 고래와 동물상, 도구에 주목할 때 누구는 인물상에 더 집중한다. 인물은 남자이고 무당이나 포수, 영매(靈媒)로 추정한다. 악기는 돌피리나 딩각, 켈프-혼으로 보인다. 반구대 앞에 설 때마다 이들의 정체와 역할이 늘 궁금했다. 그들을 다시 깨우고픈 심정에 돌피리를 찾아 나섰고 첫 연주라는 넌버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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