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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젊은 시절에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 본다. 그랬기 때문에 성공한다면 환호를 지를 것이고 실패하고 나면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들고 나면 그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쪽 방향으로 기를 쓰고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 (時節因緣)'이란 게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기를 쓰고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주를 보면 이미 운명적으로 어떻게 인생이 흘러간다는 것은 타고 난다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나 일, 돈이나 물건과의 만남도, 또한 정신적인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법이라는 것이다. 

미국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를 보면 둘은 대학시절 처음 본다. 부부의 인연이라면 그때 결혼했어야 맞다. 그런데 졸업 후 비행기 안에서 해리는 샐리를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말을 건다. 샐리도 대학 시절 해리가 한 말과 행동을 기억하며 거리를 둔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한가는 그 당시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는 꽤 회자되던 명제였다. 각자 이성 파트너와의 섹스 얘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관계라서 그래도 애정이 없는 관계이므로 편하다고 생각했다. 둘은 성격도 취향도 정 반대라서 티격태격 설전을 벌인다. 그리고 12년 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또 헤어졌다가 몇 년 후 다시 만나며 결국 결혼하여 노년을 맞는다. 해리와 같은 남성의 입장인 필자가 볼 때는 해리는 처음부터 샐리를 우정이 아닌 이성으로 보았다. 다만 샐리가 워낙 천방지축이다 보니 남녀의 우정은 가능하다는 주장에 따라 준 것 뿐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샐리도 천방지축이나 까칠한 성격이 다소 무디어졌기 때문에 결합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바로 옆에 두고도 내 사람이 될 수 없고, 잊거나 포기했는데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절인연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라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문다는 보장이 없다.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도 있다. 역시 불교 경전인 법화경에서 유래된 말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또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만남과 이별이 불가피하고,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재물 때문에 속상해 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 느긋해진다. 젊었을 때 서울 강남에 땅을 사 두었으면 지금쯤 큰 부자가 되어 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고 한탄할 필요 없다. 내 운은 거기까지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로또 복권을 한꺼번에 많이 사면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당첨 확률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당첨 될 사람은 시절인연이 맞아서 한 장을 사도 당첨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만난 시기로 보면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가장 오래 되었으니 가장 친해야 할 것 같은데 대부분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나이 들어 만난 사람들이 더 편하고 가깝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 가깝게 살아야 한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멀리 떨어져 살거나 각자의 인생 역정에 따라 경제적 수준도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그간 각자의 인생역정이 있었겠으나 경제적 수준, 취미, 가까운 거리 등, 공통분모가 많아지면서 친해지는 것이다. 시절인연에 의해 만나게 된 사람들이다.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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