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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옥 시인
오양옥 시인

 

봄을 재촉하는 것일까요. 입춘 즈음에 비가 잦습니다. 숨죽이듯 고요했던 만물들은 이 비를 기다렸을 테고 이 비로 한해 준비에 바쁠 테지요. 그냥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작심하고 보면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것이 세상일이기도 합니다. 

 1월 중순 이후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쯤 중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럽의 추위는 더할 것이라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는데 여행지 어느 곳에서나 해를 보았고 기온은 영상 7도 선을 유지하였으니 외려 피한(避寒)이 되어버린 격이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가는 여행이라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적당한 스산함이 있는 유럽의 그림을 상상하며 쇼펜하우어의 고독을 느껴보기로 하고 책 한 권 달랑 들고 나섰습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이 3개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아니라 새롭고, 같은 문화가 아니라 놀라웠으며, 무엇보다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그들의 역사에 나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운 대로 살아왔다 해도 굳이 한민족의 우수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조그마한 반도 국가, 무엇 하나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심지어 분단국가인 나라가 세계 여러 방면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숱한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서 한(恨)으로 점철된 역사를 끌어오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저력은 반드시 있겠지요.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 생각했던 이유가 어쩜 핑곗거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습니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에 앉아서 하늘만 보고 있는 개구리의 모습 어떤가요.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는 것엔 개인차도 있고 분명 한계도 있지만,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은 양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너무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은지 다시 돌아볼 일 같습니다.

 국경 통과가 자유로운 유럽이지만 나라와 나라를 넘어가는데 시간은 꽤 걸렸습니다. 실제 이동 거리가 만만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국토 면적보다 인구밀도가 적어 외곽으로 갈수록 휑해 더 멀게 느껴진 듯합니다. 동서남북으로 붙어있는 나라들이니 얽힌 역사를 짐작하기 쉽습니다. 

 사통팔달이 좋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노출되는 범위가 넓으니 고전했던 시간도 당연히 많았겠지요. 인솔자가 들려주던 유럽의 역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대다수라 지루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세계사를 공부하던 학창 시절이 떠올라 설레기도 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다니는 동안 국가 흥망성쇠의 순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유럽이 여러 환란을 경험하는 중에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 등 고전음악가들이 활동한 무대이기도 했고, 철학가, 물리학자, 화가, 정신분석학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인물과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것을 보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헝가리는 어떠한지. 세계정세에 관심이 없던 저라 할 수 있는 말일 테지만,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이토록 아픈 역사를 물려줄 줄은 몰랐을 텐데 우리의 한(恨)만이 아프다고 여겼던 제가 그토록 개구리 같아 보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구정물 같은 날씨가 딱 아프게 느껴졌던 나라였던 까닭에 도나우강 강변의 야경 속 금빛 찬란함으로 서 있던 국회의사당이 제게 주는 의미가 컸습니다. 

 프라하의 봄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체코는 또 어떠한지. 뚜벅뚜벅 또각또각, 한 장 한 장 펼쳐놓은 돌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성당과 미술관 유명한 그림들에 가려진 중유럽의 역사가 자꾸 발길에 걸려 뒤돌아보게 됩니다.

 살다 보면 가끔은 혼자인 것 같고 나만 버림받았다는 느낌도 들며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만이라는 생각이 들 땐, 그럴 땐 얼른 우물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물보다 더 큰 지도를 품고서. 그럼 서로의 우물들도 보일 테고 더 큰 강도 바다도 보일 테니까요. 

 눈과 귀를 닫아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고, 마음을 닫아 자기만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고 돌아볼 때이기도 하네요. 오양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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