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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밥, 삶은 달걀 그리고 사이다. 유년 시절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단어들이다. 그중에 사이다는 단순히 음료를 넘어 특별한 날의 상징이었다. 단단한 뚜껑을 이로 악물어 따 마시는 순간, 톡 쏘는 탄산 맛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오복사이다'였다. 병목 둘레에 파인 홈에 녹이 굳어 있었고 톡 쏘는 맛에 속은 시원했지만, 침전물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천, 삼천리 금수강산에 물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울산의 초정약수와 산전샘, 오봉사나 지장 물탕 그리고 강원도 오색약수, 청송 달기 약수, 청주시 내수읍의 초수 영덕 초수골 등 유명 약수가 많다. 초정이란 지명도 흔하다. 세종시와 김해 청주 영천 아산 황해도 안악에 있고 인왕산 아래 인경궁 인근의 초정 온천은 인목대비가 자주 이용했다. 산초나 제피를 뜻하는' 椒' 자가 붙은 게 공통점이다. 

 웅촌 초정약수는 70년대까지 아이들이 사카린을 타 사이다를 만들어 마셨고 부산, 양산, 경주, 언양, 울산에서 온 어머니들이 물을 받으려고 나래비를 섰다. 대부분 무명옷을 입던 시절이라 일대가 흰 천으로 뒤덮인 듯한 광경이었다. 칠석날엔 부산, 양산 경주 청도 등에서 온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이날 초정약수를 마시면 모든 병이 낫고 인연이 맺어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지금도 중풍과 체증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초정 약수터. 작가 제공
초정 약수터. 작가 제공

 초정약수는 여러 문헌과 시에 남겨져 있다. 조선 3대 가사 시인이었던 문관이자 무인 노계 박인로는 1621년 신유년 회갑에 한강 정구와 초정에서 목욕했다. 그때의 기분과 신비한 효험을 잊지 못해 '한강과 함께 울산 초정에서 목욕하다'란 단가 2수를 남겼다. 존경하던 정구와 자신을 논어의 공자와 증점의 사제 관계에 비유한 구절이 들어 있다.

 1909년 7월 6일 황성신문은 '초정약수는 천연의 돌 상자에서 용솟음치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차다. 맵고 신 맛이 제피 맛이다. 목욕하면 풍이나 습진이 치료되는 효능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18세기 여지도서 울산부읍지에도 똑같은 내용이 전한다. 권상일 부사는 청대 일기에 '한강 선생이 초정에 갈 때 반구서원을 지나며 머물렀다.'라고 했고 학성지에는 '초정에 돌 샘이 있어 약수가 나는데 그 맛이 제피 맛이 나 초정이라 이름 지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마다 효험을 민담이나 전설처럼 구전한다. "청주 초수를 능가하고 세계 3대 광천수"이며 "실로암이나 베데스다에 견줄만한 신의 물"이라고 확신하는 이도 있고 신비의 물이 틀림없다고 믿기도 한다. 개별 체험을 100% 신뢰하긴 어렵지만 "차갑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신진대사 및 위장운동을 촉진하고 각종 피부질환에 효과 있다."라는 말은 맞는 듯 하다. 물은 정화이자 치유이며 생명이라는 레토릭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주민들의 믿음은 완고하고 민간신앙에 가까웠다. 

 노자는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가르쳤다. 무위자연, 상선약수와 같은 말이다. 성경에도 우물, 샘, 연못, 생명수 등 영생이나 치료, 기적의 수단이나 매개로 물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께서 물로 세례를 받았고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선보였다. 샘을 두고 다투는 부족 이야기도 있고 우물가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권하고 실로암에서 눈을 씻은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기도 했다.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할 때 먼저 입수한 사람은 어떤 병이 든 낫는다는 베데스다 연못에선 38년간 앓던 환자가 단번에 깨끗해진 기적을 체험했다. 

 수백 년 그 자리에서 용솟음치는 초정약수. 한 주민이 노계 시비와 문학관 건립을 조건으로 300평의 토지를 매입해 기부를 약속했다. 문학관이 들어서고 약수 축제를 곁들인다면 울산의 새 명소, 또 하나의 문화자원이 추가될 것이다. '울산의 실로암'이 될 날이 오리란 믿음에 옛 기록을 전한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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