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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온 수필가
이다온 수필가

천년의 미소가 그윽하게 나를 쳐다본다.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두 뺨의 턱 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볼수록 편안하다. 가만히 안아줄 것 같은 표정에 얼굴무늬수막새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다.  

 경주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은 당시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 내에 있으며, 궁궐터인 월성과 월지, 능묘가 밀집된 대릉원, 대가람이었던 황룡사터와 가깝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으로 이루어진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 옥외전시장과 수장고가 있다. 

 신라역사관은 천년왕국 신라의 모두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다. 지배자를 중심으로 고대 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마립간기의 장신구들과 그릇, 권력의 상징이었던 금으로 된 출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확장기의 비석들과 불교와 관련된 순교비, 신라 풍속을 알 수 있는 보물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얼굴무늬수막새' 또는 '인면문수막새'는 역사관에 전시된 유물 중 단연 으뜸의 볼거리다. 수막새는 목조건물의 처마 끝에 있는 무늬기와로, 영묘사의 한 건물에 장식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떨어져 나갔지만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이어서 '신라의 미소' 혹은 '천년의 미소'로 상징되고 있다. 둥근 수막새는 통상 연꽃무늬로 장식하는 것이 보통인데 사람 얼굴을 넣은 것이 특이하다. 신라인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낸 작품으로 당시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신라의 미소는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치미에서도 확인된다. 치미는 고대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이다. 어지간한 어른 키보다 커서 우선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구웠으며, 몸통 양 측면과 뒷면에 연꽃무늬와 얼굴무늬를 별도로 찍어 번갈아 끼워 넣었다. 웃고 있는 무늬의 수염이 있는 남자 얼굴과 수염이 없는 여자 얼굴에서 당시 신라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신라미술관은 당시의 찬란한 미술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 불교조각의 아름다움과 시각적 다채로움이 역사와 전설, 정토라는 개념에서 펼쳐지도록 구성했다.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믿음, 신라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 위안을 주었던 다양한 설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절이 별처럼 많아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라고 전해진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얼마나 많은 사찰과 탑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최초 사찰인 흥륜사부터 황룡사 9층 목탑과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발견된 다종다양한 사리기와, 공양품 등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  

 월지관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주제별로 전시되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월지는 동궁 안에 있던 인공 연못이다. 조선시대 이래 안압지로 불렸으나 신라 사람들은 월지라고 했다. 문무왕 14년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어 이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왕실과 귀족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범종과 석탑, 석불, 석등 등 다양한 석조품이 전시되어 있는 옥외전시장은 경주박물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어진다. 오른쪽을 보면 유명한 국보인 선덕대왕신종이 보인다. 일명 에밀레종으로 불리며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동종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동종을 대표한다. 지금은 타종소리를 녹음으로만 들을 수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야외에 전시된 고선사터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안쪽으로 한참을 걷다보면 다리가 보인다. 또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교량을 지나자 신라천년의 보고 '수장고'가 반긴다. 전시관에 옮겨지기 전의 유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지은 전용 보관시설이다.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아 숫자로만 적혀져 있다. 

 천천히 관람하다보니 어느새 한나절이 지났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은 경주박물관의 매력은, 아마 천 년의 시간이 오롯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머지않은 날에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정문을 나선다. 멀리 신라의 마을이 고즈넉하다. 이다온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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