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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근록. 김잠출 제공
회근록. 김잠출 제공

남녀가 일심동체가 되는 혼인은 음양의 합이자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고 만복의 근원이다. 그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가화만사성의 시작이고 해로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이다.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네' '달 속의 항아가 다계 마을의 즐거움을 안다면 닷새 밤낮을 함께 해도 좋으리' 2012년 11월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언양 '회근록'에 실린 축시 중 일부이다. 

 '회근록, 癸亥 二月 二十 七日' 언양 평리(괴말) 안동 권씨 집안에서 보관한 필사본 문집의 표지 제목이다. 혼인 60주년을 맞아 연 회혼식에서 낭독하고 남긴 축시(7언 율시 108수)와 문장(5편)을 모아 엮었다. 회혼의 주인공은 증동몽교관조봉대부(贈童蒙敎官朝奉大夫) 상문(尙文, 호는 茶隱) 공과 경주 최씨 부부이고 손자 치근(致斤)이 하객의 시와 문장을 받아 보관하다 직접 필사했다. 치근은 통훈대부 사헌부감찰(通訓大夫 司憲府監察)을 지낸 언양 유림으로 천사 송찬규의 글 등을 묶은 죽포집(竹圃集)을 남겼다. 이 가문은 북구남작(北龜南酌)이나 북권남신(北權南辛)에 모두 닿아 있었다. 언양의 경승은 북쪽의 반구대와 남쪽의 작괘천이 으뜸이고 괴말의 안동 권씨와 삼동 둔기의 영산 신씨가 언양의 대표 씨족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집안으로 보인다.

 후손인 향유 병옥이 1955년 여러 향림과 더불어 반구대의 반고서원 앞에 포은 선생 유허단을 세웠다가 1965년 댐 건설로 수몰을 우려해 강 건너로 옮겨 설치했다. 1983년 유사 종술(북권)은 도유사 신창호(남신)와 함께 서원 복원을 추진했다. 포은대 건너편 언덕에 옮겨진 지금의 서원은 반구서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 집안의 후손이 원장이다. 

 1885년 학산(鶴山) 필운(1843∼1923)은 천사(泉史) 송찬규(1838∼1910)과 함께 포은대 영모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 그리고 후손 포양은 1946년 3,200여평의 부지를 희사해 반곡초등학교를 지었고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기술이 그의 아들이다.

 회근록은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라 161년 전의 언양 회혼례 모습이 궁금했다. 당시 언양 유림의 생활상이나 지역의 면모를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전체 문장과 시를 더듬어 '1863년 음력 2월 27, 회혼례 식장'을 복원해 보았다. 완전한 원형은 아니지만 전체 얼개는 정리가 됐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863년(고종 즉위년) 음력 2월 27일 사시(巳時),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각이다. 태화강이 시작되는 고헌산 동쪽 아래 언양읍 평리(괴말)마을의 안동 권씨 집안에 특별한 잔치가 열렸다. 신랑은 팔순의 권명의요 신부는 81살의 경주 최씨이다. 부부의 나이는 모두 161살이다. 둘은 1803년 이날 혼인했다. 펄럭이는 차양막 아래 12폭 병풍을 두르고 초례상을 차리니 '조선판 리마인드 웨딩' 그대로였다. 60년 전의 초례상이 재현된 것이다. 보자기에 싼 암탉과 수탉은 사이좋게 쌀을 쪼고 있고, 촛대와 소나무, 대나무, 사철나무를 꽂은 화병과 청실홍실, 대추 등을 상 위에 차렸다. 신랑은 사모관대와 전통 혼례복을 갖췄고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어 발라 누가 봐도 새색시이다. 신랑 신부가 합근례를 행하고 또 다른 백 년을 다짐하는 서약을 하는 순간 회혼례는 절정을 맞았다. 이어서 5대 자손 50여 명이 신랑·신부 앞에 나래비를 서 헌수했다. 자자손손 모두 고운 색 옷을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 춤추고 어리광을 부렸다. 동족과 친지, 선비들도 악사의 연주에 맞춰 저마다 축시를 낭송하고 무병장수를 축원했다. 잔치는 사흘 동안 내내 이어져 온 마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언양 '회근록'은 한 가문의 회혼례 축시를 모은 것이지만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고 19세기 후반 언양의 회혼례 사례를 확인한 점과 시문을 통해 밀양, 경주, 대구 등 영남 유림과의 교유를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런 소소한 자료를 활용하는 것도 향토사 복원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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