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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영화 '리빙 : 어떤 인생'에서 주인공 빌나이가 부른 '로언트리'가 생각이 난다. 죽음을 앞두고 기억 저편에 있는 어린 시절이 마법처럼 얽힌 가지와 첫 새봄을 알리는 너의 잎새라며 내 소중한 나무라 노래한다. 무심히 서 있기만 한 나무이지만 누구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무에 대한 감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완전한 나무
 박라연

 전신이 쓸쓸할 때
 차오르는 저 가로수의 수액을 잠시 빌려 쓰면 어떨까

 연두가 돋아나는 봄 가로수가 되려면
 서서 잠드는 나무의 곁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면 되나?

 겨우 두 팔과 두 손으로도 허공의 위세를
 비바람을 휘휘 내저으며 저항하는 아비가 되겠다고 감히 약속드리면 되나?

 어쩌자고 넌
 가지와 잎을 위해 기꺼이 물을 빨아올리는
 잔뿌리가 된 거니?

 뿌리의 피가 죄다 빠져나가서 쥐가 날 때마다 
 깊은 밤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넌

 살마저 흙으로 빠져나가버려서 뼈만 보이는 
 다리의 
 어미의 길을 약속드려야 하는 넌
 어쩌자고

 그자의 나무가 되었던 거니

 '누가 불러준 말을 받아 적었다고 말해야 옳다'고 시인의 말에서 썼다. 아마도 이 시도 '연두가 돋아나는' 봄 앞에서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를 놓치지 않은 것 같다. 

 나무의 물관 속 수액이 차오르는 소리가 시가 되었을 것이다. 봄이 던져주는 소리, 나무가 몸 밖으로 표출하는 색깔을 받아 적는다.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어 나무를 지키는 방법이 두 팔과 두 손과 뼈만 남은 다리가 되는 것도 가로수가 들려주는 비명 소리로 안 것은 아닐까. 

 무수한 사물들은 쉼 없이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봐달라고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이야기를 적어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자고' 시인은 나무의 세세한 소리와 땅속의 잔뿌리까지 끌어 올려 나무가 견디고 있는 아픔을 건드리고 있는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받아 적어 생기 왕성해지는 이 계절에 전신이 쓸쓸해지는지, '어쩌자고'

 물기 오른 가지와 꽃과 새잎을 받아 적기에 바쁜 봄이다. 

 박라연 시인은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에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 '우주 돌아가셨다' '빛의 사서함' '노랑나비로 번지는 오후'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등이 있다. 윤동주상 문학부분 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박두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도순태 울산작가회의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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