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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이서원 제공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이서원 제공

간간이 개 짖는 소리만이 고요를 찢는 카즈베기(Kazbegi). 수천 미터의 산에 둘려있어서인지 어둠은 더 짙다. 종일 예까지 달려오느라 피곤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창을 여니 적벽의 눈바람이 들이치는지 서늘하다. 의자를 바투 당겨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고 굵직한 첼로 음악을 켠 채 모로 누웠다.

한국어가 유창했던 19세 소녀 리사와 필자.  이서원 제공
한국어가 유창했던 19세 소녀 리사와 필자.  이서원 제공

 

 조금 전 데스크에서 만난 리사(Lisa)를 생각했다. 체크인(check-in) 할 때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오뚝한 콧날을 더 가까이하며 자랑했다. "아줌마" "아버지" "언니", 내가 웃자 한국을 좋아한다며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주머니"가 아니라 "아줌마"라는 말에 사실 웃었던 것이었는데 몰랐을 것이다. 가방에서 과자, 커피, 손수건을 꺼내 선물했다. 열아홉 살의 소녀는 당당했다. 리사가 갑자기 담당 직원에게 어떻게 내 소개를 했는지 방값을 30%나 깎아 주겠단다. 극구 사양했지만, 오히려 더 고맙다는 듯이 한국에 꼭 가고 싶다며 제 마음을 보였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해발 2170m 높은 언덕 꼭대기 그곳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만나면
뜨겁고 울컥한 것이 가슴을 달군다

 여기서 차로 조금만 더 가면 러시아, 즉 옛 소련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공산당, 스탈린, 레닌, 시베리아 바람 등의 이미지가 남아있어서인지 기분이 참 묘하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서방에서는 전쟁의 위험이 가장 큰 나라라고 알려져 있듯이 나 또한 이곳을 그런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다니 별수 없는가 보다. 

 

러시아와 조지아의 경계인 샤니산.  이서원 제공
러시아와 조지아의 경계인 샤니산.  이서원 제공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이 찾아 경배하는 곳
밤잠을 설치듯 보내고 창을 열자 아침 햇살이 고산을 비추고 있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Gergeti Trinity Church)가 황금관을 쓴 듯 아름답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이 마을이 이미 약 1740m 높이에 있으니 교회까지는 400m 정도만 오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급경사라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돌아보기를 반복한다. 차로 가면 금방이지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걸어서 가는 이유는 그만큼 이곳을 사랑하며 아끼고 싶은 마음이리라. 

 땀을 닦으며 마음을 다잡고 옷깃을 여민다. 바람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세차다. 쉽사리 제 모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자존인가. 오솔길의 굽은 등산로를 약 1시간 반쯤 오르니 드디어 십자가의 종탑과 더불어 교회가 눈앞에 현현(顯現)하였다. 석상처럼 굳어 멀찍이 서서 오른손을 이마에 얹고 햇빛을 가린 채 바라보았다. 눈부신 경이다. 왜 세계의 수많은 여행객이 이곳을 찾아 경배하며 찬미할까. 조지아에 도착한 지 며칠을 지나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여기에 섰다. 이런 호사를 혼자 누리는 게 오히려 죄스럽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와 마주하기 위해 다가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럴 땐 말보단 침묵인가. 내가 왜 무엇을 찾으려고 이역만리 예까지 왔나. 자문(自問)해 보지만 답을 얻고 싶은 건 결코 아니다.

 성경의 첫 구절을 떠올려본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저 하늘과 땅의 창조 이후 이토록 아름다운 교회를 왜 카즈베기 고원에 건축하게 하신 것일까. 믿음은 무엇이며 신앙의 근원은 무엇인가. 뇌리를 스치며 파동을 일으킨다. 두고두고 아껴 읽어야 할 책의 한 면을 넘기듯 그렇게 조금씩 다가섰다. 

 바람은 수시로 향방을 바꾸며 더욱 몸을 휘청이게 한다. 마소(馬牛)들이 풀을 뜯느라 새벽부터 부지런히 이곳까지 올라와 있다. 단순히 목가적 풍경으로만 볼 수 없는 뜨겁고 울컥한 것이 가슴을 달군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울타리를 치고 입장료를 받으며 갖은 장비를 다 동원하여 수입을 올리는 데 더 급급했을 게 뻔하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 그대로다. 방치가 아니라 순수며 무지가 아니라 예술이다. 말과 소, 개와 양들이 노닐며 사람도 그중 한 일부가 되어 근원에 닿아 있음이 놀랍다.

위태함 속에 정중동의 미 한껏 살린 
수백 년 전에 어떻게 저 수많은 돌을 여기까지 옮겨와 쪼고 다듬고 쌓아 올려 이토록 거대하게 지을 수 있었을까. 마치 돌을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러 지은 듯 장인의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이곳에 서면 저 아래 동네가 조그마한 성냥갑처럼 보이지만 그 풍경 또한 천하일품이다. 마을 앞으로는 쿠로산, 샤니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세상에서 단절된 듯 보이지만, 저들이 갖는 종교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외세 이교도의 핍박으로부터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배수의 진을 친 듯 수천 미터 낭떠러지를 뒤로 두르고 있다. 위태함 속에 정중동의 미를 한껏 살린 츠민다 사메바 교회. 나는 거친 숨을 참으며 볕 좋은 양달 돌벽에 등을 기대앉아 사르르 눈을 감았다.

 신(神)은 이 세상을 다 만든 후 각 민족에게 땅을 나누어주려고 대표들을 불렀단다. 땅을 모두 나눠주고 돌아가려 할 때 그제야 도착한 민족이 있었다. 왜 늦었느냐고 묻자 사실은 전통 잔치를 즐기느라 늦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신은 그들의 잔치에 동참했고, 함께 포도주를 마시다 취해 자신이 가장 아껴두었던 마지막 땅을 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조지아 나라라고 한다.

 

14세기 이름 모를 건축가에 경외감
오래된 벽의 낙서 마저 역사가 된다. 누군가가 1887년이라고 새겨 놓았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이나 흔적을 남기려 한다지만, 이토록 웅장한 교회를 짓고도 제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14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그는 과연 누구일까. 대자연과 조화로운 융합을 꿈꾸며 머릿속에서 수만 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게 뻔하다. 나라의 안위와 종교의 지향점을 클로즈업시키며 마침내 완성한 교회. 누구나 이 앞에서의 손 모음과 무릎 꿇는 경배는 자연스러운 순정이다.  

 푸른 초원을 걷다 저만치 자리에 갖고 온 텐트를 쳤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호텔이 있다 한들 이보다 더할까. 오늘은 이 위대한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잠을 청할 참이다. 사람들이 다 내려가자 교회와 나, 그리고 수천 미터의 산허리를 감싸며 제 모습을 시시때때로 바꾸는 흰 구름만 남았다. 하늘 아래 구름이라지만, 지금은 내 발아래에서 융단처럼 펼쳐져 어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줄 양이다. 어디서부터 저들은 서로 합하여 여기까지 왔을까. 하기야 나 또한 저 구름과 다르다 할 수 없겠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이 카즈베기의 산과 교회의 조화에 내 혼이 나갔으니! 그로부터 수개월 후 마침내 오늘 이곳에 와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우기며 보금자리에서 두 다리를 뻗는다. 버너에 물을 끓여 햇반을 데웠다. 깻잎, 김, 김치만으로도 황제의 잔칫상이 부럽지 않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아니라 이 천하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더욱 뜨거울 뿐이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교회를 배경삼아 텐트를 쳤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교회를 배경삼아 텐트를 쳤다.  이서원 제공

 저 아랫마을에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어둠이 목화솜처럼 산과 산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코카서스산맥 위로 뜬 작은 초승달 하나가 한국과 같구나 싶어 애틋하다. 다시 코펠에 물을 끓였다.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고도가 있어서인지 슬슬 추위가 엄습해온다. 옷깃을 여미고 마을 산책가듯 슬며시 교회로 다시 올라가 보았다. 텅 빈 충만이 이런 것일까. 계단에 앉았다. 이럴 때 기다렸다는 듯이 수도사 한 분이라도 나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아무도 내 마음을 붙잡아 주지 않는다. 너무 멀리 왔지만, 돌아갈 수 있는 내 영역의 테두리 안에서 이 땅에 있음이 감사하다. 불현듯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억지로 두 손을 입에 갔다 대었다. 야호! 야호!   

나라의 안위와 종교 지향점의 절묘한 조화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꿈인 듯 생시인 듯 천둥 번개가 지구를 사과 쪼개듯 두 동강 낼 기세로 요란스럽다. 비와 우박이 천지 분간 못 할 만큼 쏟아진다. 텐트 위 빗줄기는 송곳처럼 날카롭다. 어디 조지아의 매운맛 좀 보라는 것인가. 고산인 만큼 수시로 변하는 날씨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철수를 해야 하나, 그대로 끝까지 있어야 하나. '그래, 나도 오기가 있지. 누가 이기나 보자'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으나 번개는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듯 천지를 휘젓는다. 단두대 위의 죄인같이 넋 놓고 있어도 상황이 쉽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메밀꽃처럼 빛나던 초저녁의 별빛은 이미 눈치를 채고 삽시간에 다 숨어버렸다. 빼꼼히 문을 여니 물줄기가 고랑을 타고 산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짙은 안개에 더불어 바로 앞의 교회, 근처의 풀과 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저 산정에서 눈사태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낭패다. 하는 수없이 텐트를 둔 채 몸만 빠져나와 하산을 하기로 했다.  

 세상사 이와 다를까. 나약한 나의 존재가 여리디여린 이슬 같다. 내려가는 길도 한 치 앞을 분간조차 할 수 없다. 천상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땀과 비에 젖은 채 삽시간에 당도했다. 아! 하늘과 땅이 하나였다는 걸 다시 느끼니 무상하다. 이런 삶을 우린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욕망만을 좇아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공포에 질린 채 초라한 몰골로 인투리스트(Intourist)호텔로 들어섰다. 나보다 더 놀란 리사가 뛰어나왔다. "오 마이 갓!"을 몇 번이나 외치며 울먹이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 감겨오는 듯하다. 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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