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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성년의 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해에 태어나 만 스무 살이 되는 남녀 청년들이 오늘을 기점으로 성년 대접을 받게 된다. 옛날에는 성년식을 치름으로써 말 그대로 어른 대접을 받았다. 가정을 꾸리고 전답을 나눠받을 자격도 주어졌다. 꽤 기다려졌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주인공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행사만 요란한 성년식이 되어 버렸다. 내 때도 그랬다. 나는 군부독재 정권 시절인 지난 82년에 성년이 되었다. 그때 나도 지금 청년들처럼 성년의 날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나는 성년이 된다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성년들의 사회집단 즉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군부독재에 고개 숙인 그들의 사회에 편입된다는 것이 수치스럽게만 느껴졌다. 당시의 청년들 대부분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후 어느새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87년 6월 항쟁 직전에 태어난 필자의 딸도 오늘을 기점으로 성년이 된다. 87년 이후 20년이 지난 올해 성년이 되는 내 딸과 청년들은, 지금의 기성세대인 나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어떤 성년식을 준비해 주기를 기대하는 걸까? 자못 궁금하여 몇몇 젊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그네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성년식은 무슨'이었다. 성년식 행사가 신세대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는 먹고 살길 막막한 자신들의 딱한 처지에 이유가 있다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 버린 '청년실업'이 이제 스물 한살인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네들의 부모 세대인 우리는 '적어도 우리 자식 세대는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87년 민주화 대항쟁에 가담했다.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당연히 우리 세대는 '우리 자식들의 행복한 미래'를 확신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 받고, 일자리 하나 반듯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이처럼 심각해진 직접적 원인은 IMF 사태다. 어떤 교수는 오늘 성년을 맞는 스물한 살 청년들을 포함한 20대를 'IMF세대'라고 규정했다. 국가 부도사태때 10대를 보내면서 실직한 부모 세대와 그 고통을 함께 감내했고, 지금도 청년 실업으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의 20대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몇 년 후에는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 죽고 싶은 심정일 그네들에게 여기저기서 열리는 요란한 성년식이 눈에나 들어오겠는가?
 짧은 시간,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올해 성년이 되는 젊은이들은 87년 민주화 항쟁의 해에 태어났다. 만약 6월 민주화 항쟁이 미숙한 상태로 끝나지 않고 좀 더 진전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IMF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한국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민주화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그랬다면 부패한 정권이 돈에 눈먼 재벌과 결탁하고, 한국경제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경제적 야욕이 더해져 터진 IMF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87년 민주화 항쟁 20주년인 올해 성년의 날도 좀 달랐을 것이다. 그때 태어난 스물한 살 청년들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멋진 성년식을 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기쁜 맘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사회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상당한 민주적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87년 6월 항쟁은 미완이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우울한 성년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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